1. 개요
조선 후기의 문관, 학자, 정치인
2. 생애
인조~숙종 시기에 활동한 남인파의 중진. 주로 관료적인 입장에서 남인의 온건파인 탁남파를 이끌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재야에 있다가 올라와서 청류를 자처한 남인 청남파의 허목, 윤휴, 윤선도하고는 같은 남인인데도 갈등하였다.
1671년 영의정의 자리에 올랐으나 당시 주류 세력이던 서인 송시열의 배척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1674년 2번째 예송인 갑인예송에서 1년간 상복을 입는 기년설을 주장했는데 남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다시 영의정으로 복직하였다. 이때 남인은 서인에 대해 강건한 입장의 청남과 온건한 입장의 탁남으로 갈라졌는데 허적은 탁남의 영수로 활동했다. 1678년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유통시킨 것도 허적.
남인의 종주로서 중량감이 있어 서인을 견제하려는 현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숙종은 커져가는 남인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경신환국을 일으키면서 허적은 실각한다. 거기다 아들 허견이 복선군과 역모를 꾸미던 것이 들통나 죽고 그로 인해 허적도 사약을 받는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으면서 신원되었다. 그 후 갑술환국으로 또 추탈되었으나 1795년(정조 19년) 10월 정조의 특명으로 복관되었다.
전라감사로 부임하던 시절에 귀인 조씨가 종을 보내어 사통을 시도했다. 허적은 후궁의 종과 대면할 일이 없다 하여 물리치려 했는데 종이 말하길 "지금 저를 내치시고도 더 좋은 벼슬을 하실수 있겠습니까?" 라며 무엄한 말을 하였고, 허적은 그건 너따위가 입에 올릴 말이 아니다 라며 그대로 죽을 때까지 곤장을 친 다음 시체를 문밖에 던져버렸다. 귀인 조씨는 그 종이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린 것이라며 꼬리자르기를 하고 외려 인조의 귀에 이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기 위해 입단속을 철저히 시켰다고 한다.
3. 가족
조부 : 허잠(許潛)
조모 : 민연향(閔蓮香) - 여흥 민씨 민희열(閔希說)의 딸
백부 : 허경(許儆, 1566 ~ 1617?
사촌 : 수빈 허씨(粹嬪 許氏)
고모 : 허순영(許順英)
고모부 : 연원부원군 이광정(延原府院君 李光庭)
사촌 : 연안 이씨(延安 李氏)
사촌 매부 : 민광훈(閔光勳)
사촌조카 : 민유중(閔維重)
아버지 : 허한(許僩, 1574 ~ 1642)
어머니 : 증 정경부인 안동 김씨(贈 貞敬夫人 安東 金氏)
누나 : 신항구(申恒耉)의 처
형님 : 허치(許穉, 1604 ~ 1636)
형수 : 신응망(辛應望)의 딸
동생 : 허진(許稹)
동생 : 허질(許秩)
동생 : 허제(許穧)
정부인 : 증 정경부인 광주 이씨(贈 貞敬夫人 光州李氏) - 이서(李𥳕)의 딸
계부인 : 정경부인 여흥 민씨(貞敬夫人 驪興閔氏) - 민지익(閔之釴)의 딸
첩부인 : 성씨 미상
서장남 : 허견(許堅, 1646년 ~ 1680년)
며느리 : 예영 - 청풍부원군 김우명의 첩의 여동생
며느리(첩) : 성씨 미상 - 허견의 첩, 허견의 옥사 이후 김익훈의 첩이 되었다.
서차남 : 허후(許厚, 164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