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선 시대의 무관이자 외척. 조선 19대 군주 숙종의 비빈(妃嬪)이었던 희빈 장씨(장옥정)의 작은 오빠로 20대 군주 경종의 외숙부이다.
숙종 27년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 민씨가 회복치 않고 빨리 죽기를 기원하는 저주굿을 했다는 대역죄 혐의 아래 자진한 뒤 그녀의 법적 대리인으로서 사형에 처해졌다.
2. 생애
보통 드라마에서는 평민이며 건달로 지내다가 여동생이 후궁이 된 덕에 한성판윤으로 임명되어 벼락출세했다는 식으로 나오곤 하는데, 실제로는 희빈 장씨가 궁녀가 되기 전에 무과에 급제해서 숙종 6년 당시 내금위에 재직 중이었다. 1683년에는 그 관직이 종6품 포도부장에 달했다. 1683년 3월 13일 정명공주의 잔치에서 노래를 부른 숙정(훗날 장희재의 첩이 되는 인물)에게 취객이 꼬여들자, 숙정을 취객의 행패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 것 때문에 인현왕후의 큰아버지 민정중에게 공무 이탈 혐의로 엄청난 매를 맞기도 했다. 장희재는 이미 정6품 사과 김덕립의 딸과 결혼한 상태였으나, 위에 언급한 인연으로 숙정과 맺어져 결국 조강지처였던 작은애기를 소박하고 기생 신분의 숙정을 정실로 맞이했다.
여동생 장옥정이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 김씨에 의해 쫓겨났으나, 명성왕후가 승하하여 장례가 끝난 후 자의대비 조씨의 중개로 1686년 초에 다시 궁녀가 되었으며 이때 숙종의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었다. 1688년 장옥정이 숙종의 첫 아들인 원자를 낳아서 중전이 되자, 중전의 오빠이자 원자의 외숙부이라는 배경 덕분에 종3품 훈련원부정, 정3품 내금위장, 종2품 금군별장 등 요직에 임명되며 탄탄대로를 걷게 되었다. 1692년에는 정2품 총융사로 승진하고 종2품 한성좌윤도 맡았다가 1694년 갑술환국 당시에는 종2품 포도대장을 맡았다.
그러나 인현왕후가 복위하고 희빈 장씨가 중전 자리에서 쫓겨나 다시 후궁(희빈)으로 강등됨에 따라 입지가 좁아졌다. 갑술환국의 여파로 인해 사형당할 위기에까지 몰렸지만, 세자의 외숙부였던 관계로 영의정 남구만 등 소론 대신들이 참수를 강력하게 반대해서 제주에 유배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이후에도 숙원 최씨를 독살하려 하였다는 혐의를 받아 조사를 받기도 했으며 자작극을 벌였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기도 하는 등 많은 고생을 했다.
1701년 8월에 인현왕후가 사망하자 희빈 장씨와 같이 이에 연루되어 참수형에 처해졌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1701년 11월에는 그의 시체까지 부관참시되었다. 장희재가 참수당하기 며칠 전 여동생 희빈 장씨도 사약으로 생을 마감했으며 부인들 중에서는 작은애기와 숙정이 체포되었다. 자식들 중 어린 아들은 체포를 모면했으나 큰아들 장휘는 체포당해 심한 매질을 당했다. 남편에 의해 평생 동안 괄시를 받아온 작은애기는 장희재와 동평군이 그간 저지른 일을 남김없이 고해바쳐 장희재가 죽을 수밖에 없게 궁지로 몰아넣고 자신도 죽었다. 작은애기의 고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이에 죽은 사람들의 유가족과 종들이 몰려와 그녀의 시체를 참혹하게 난도질하였다고 한다. 숙정은 의금부로 끌려가 압슬형을 당한 끝에 죄상을 자백해 희빈 장씨의 궁녀 숙영과 설향, 무녀 오례 등과 함께 군기시 앞으로 끌려가 거열형을 당했다. 이때 죽은 사람이 어찌나 많았던지 작은애기도 죽었는데 작은애기의 죽은 시체를 숙정 등 자근애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의 가족이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오랜 기간 동안 저잣거리에 방치되다가 어느 군관이 목을 잘라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고 한다. 일단 묘지가 있는 것을 보면 수습되긴 한 듯.
그의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은 범서인 세력 내부의 다수당이었던 소론의 몰락을 불러일으켰다. 소론의 조정 영수였던 남구만이 인현왕후의 복위를 꾀했던 소론 한중혁 일당은 가혹하게 처벌하였으면서도 일관되게 장희재에 대한 온건론을 펼치자 송시열, 김수항, 김익훈 등의 죽음으로 어그로가 팍팍 올라 분노 게이지가 만땅이었던 젊은 소론들은 격노했고 소론의 재야 영수인 박세채까지도 강경론을 주장하는 노론과 뜻을 같이 하자 박세채 문하를 비롯한 젊은 소론들이 대거 노론으로 전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애초에 젊은 새 세력이 많다는 의미로 '少론'이라 불렸던 소론은 나이가 많은 대신들이 주축이 되었고 송시열을 추종하는 늙은 구 시대 인물이 많다고 '老론'이라 불렸던 노론은 거꾸로 혈기왕성한 젊은 선비들이 대거 합류하게 되어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 큰아들 장휘는 체포되어 국문을 당했지만 대는 끊어지지 않았는데 막내 아들이 너무 어려서 체포를 모면해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