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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김일경(金一鏡)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5|조회수12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아계(丫溪)며 사색당파 중 소론에 속했다.

2. 생애

2.1. 관직생활

1687년 진사와 생원 양시에 합격했고, 1702년 식년문과에 장원하여 벼슬을 시작했으며 1707년 문과 중시에 장원하여 판결사로 특진했다. 노론 측 기록에서도 '김일경에게 문예(文藝)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학문이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숙종의 뒤를 이어 경종이 즉위하고 나서, 1721년 노론 정권이 경종의 병약함을 이유로 세제(뒤에 영조)가 대리청정을 실시하게 했다. 김일경은 이것을 반대하며 노론 탄압에 앞장섰다. 결국 김창집, 이이명, 조태채, 이건명 등의 노론 4대신을 사형에 처하게 하였다. 그 밑에 있던 노론의 신하 수백 명을 살해, 추방시켰다. 이것이 신축년인 1721년과 임인년인 1722년에 걸쳐 일어난 신임옥사(신임사화)이다. 다만 김일경이 소론 강경파인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없는 죄를 지어 정적을 탄압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4대신 중 이이명은 그 자신이 노골적으로 국왕을 능멸한데다, 정당하다고 했지만 자식이 역모에 참여하기도 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는 다른 3명도 마찬가지. 신임사화 항목에 자세히 적혀 있지만 애초에 노론 주류는 경종에게 대단히 적대적이었다.

김일경은 이렇듯 노론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는데도 경종의 국구 어유구를 신임옥사의 원훈(元勳)으로 삼기를 추천하였다. 어유구가 비록 국구이기는 하나 노론 4대신 김창집의 제자로 노론으로서 노론 4대신의 처벌을 반대하는등 일관된 게 노론으로서 행동하였음에도 김일경은 어유구에게 우호적이었다. 노론들은 어유구가 신임옥사의 원흉 중 하나로 생각해 증오하였고 소론 역시 어유구가 겉으로는 노론을 옹호했지만 본심을 달랐다고 여겼는데 당시 사람들은 어유구가 비밀리에 김일경을 비롯한 소론 강경파와 결탁한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2.2. 사망

이후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재집권하였는데, 신임사화의 수괴라는 죄목으로 1724년 참수형을 당하였다. 영조에게 국문을 받으면서도 신이라는 호칭을 쓰지도 않고 꼿꼿하게 자신은 억울하다며 대들었다. 또한 스스로 선왕의 충신이라 하고 '저'라 하지 않고 '나'라고 하였다. 김일경의 글에는 경종과 영조를 당나라 이건성의 일, 회인종무(懷刃鍾巫) 등에 비유한 말이 많았는데 모두 동생이 형을 시해한 일과 관련된 것이다. 이는 영조가 경종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말이 퍼져 이인좌의 난 등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영조도 김일경을 미워해 형 판결이 내려지자마자 바로 사형을 시켰다. 조선시대에 참형은 추분 이후 춘분 이전 사이에 집행하게 되어 있는데 역모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그런거 없었고, 김일경 또한 마찬가지로 절차에 따라 곧바로 처형당했다.

2.3. 사후

이 정도로 영조 및 노론과는 불공대천과 진배없는 사이였다보니 당연하게도 이후 김일경은 역적으로 취급받았다. 반대로 소론 준론들에게는 충신 취급을 받았고 이들은 이인좌의 난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이후로도 영조는 영조 31년 나주 괘서 사건이 일어나자 그나마 살아남은 김일경의 후손들을 보이는 족족 없애버리는 등 철저히 씨를 말렸으며, 후대의 왕들 또한 신임사화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노론의 편을 들었으므로 복권은 꿈도 못 꿀일이었다. 김일경의 복권은 조선이 멸망하기 직전인 1908년에야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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