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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이건명(李健命)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6|조회수10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세종의 서5남 밀성군의 8대손이다.

2. 생애

1684년에 과거에 급제해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정유독대 이후 우의정이 되었으며 연잉군의 보호를 부탁받았다. 이후 늙은 숙종이 죽고 경종이 즉위했다. 이때 이건명은 총호사로 숙종의 장례식을 총괄했다. 이후 우의정을 지냈다.

경종의 치세에는 좌의정에 올라 노론의 영수가 되었는데 조태채 등과 연잉군을 세제로 올리자고 제안이라고 쓰고 강요라고 읽는다하면서 김일경 등의 소론 강경파에게 미움을 샀다. 목호룡의 고변으로 위기에 놓이고 다행히 사형을 피했지만 전라도 흥양의 뱀섬에 유배를 가며 위리안치당하고 만다. 하지만 주청사로 청나라에 가서 한 말이 문제가 됐다. 당시 청나라의 황제였던 강희제와 청나라의 여러 대신들이 경종의 연잉군 세제 인정 요구에 의아해하며 '너희들의 임금은 아직 젊으니 얼마든지 아들을 낳을 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세제는 무슨 세제냐.'라고 태클을 걸자 이를 둘러댄답시고 "임금이 양기가 없어 여자를 가까이 하지 못한다."는 무엄한 망발을 내뱉었던 것. 이게 빌미가 되어 소론의 탄핵을 받았고 경종마저 격노하여 다른 노론 4대신들은 사약을 마셔 곱게 사사당한 것에 비해 이건명은 목이 잘려서 시신조차 온전히 보존하지 못하는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영조가 즉위했을 때 노론의 주청으로 복권되어 충민이라는 시호를 얻는다.

3. 여담

정승으로 있을 때부터 백성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백성들을 위한 많은 정책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때 군포를 낮추자고 제안한 것이 이후에 영조가 균역법을 제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시를 잘 썼다고 한다.

후손들도 높은 관직에 올랐다.

4. 저서

저서에 「한포재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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