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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최윤덕(崔潤德)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2|조회수7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초기의 장군.

2. 생애

1376년(우왕 2) 경상도 금주(金州) 의창현(義昌縣, 현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아버지 최운해와 어머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최윤덕의 가문은 대를 이은 무반 집안으로 할아버지 최록은 정4품 호군을 지냈다. 아버지 최운해는 위화도 회군에 참여해서 고려에서 회군공신이 되었고, 조선 건국 후에는 이성계를 따른 공으로 개국원종공신에 책봉되었다. 최운해는 조선 개국 후 태조 2년(1393)에는 양광도, 태조 5년(1396)에는 경상도 영해, 장기 등지에서 왜구를 크게 무찔렀다.

서거정이 저술한 야사인 필원잡기에 따르면, 최윤덕의 친모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숨을 거두었고, 최운해는 변방에서 장수로 있었기 때문에 최윤덕을 이웃의 양수척(백정)이 양육했다고 전한다.

최윤덕은 음서로 벼슬을 시작하다가 태종 2년(1402) 식년시 무과에 3등 20위로 급제, 태종 10년(1410)에는 중시(重試) 무과에 급제하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군이 된 그는 태종, 세종 치세에 크게 활약하여 세종 연간에는 김종서와 함께 4군 6진을 개척하였다. 그가 개척한 곳은 여연(閭延), 무창(茂昌), 자성(慈城), 우예(虞芮) 4군으로 서북 4군이라 불린다.

최윤덕은 꾸준히 승진하여 스스로 무장이라는 이유로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 15년(1433) 병력 1만 5천 명을 이끌고 파저강(婆猪江) 일대의 여진족을 정벌한 공로로 우의정, 세종 17년(1435)에는 문반 최고위직인 좌의정까지 올랐다. 다만 무신이라는 점이 참작되어 다른 업무는 면제되고 특별히 북방문제만 전담하였다. 이 정도 대우를 받은 무신은 드물다. 이전에 무신으로서 정승이 된 이는 개국공신으로 첫 두 정승 중 배극렴, 제1차 왕자의 난의 공신 조영무 정도였다. 같은 시기 대마도, 여진 정벌에서 활약한 이순몽과 같이 능력은 뛰어나지만 인간 말종으로 유명했던 무신들과 달리, 최윤덕은 폭행사건 하나도 일으키지 않아 문신들도 존중했다고 한다.

이후 여연에서 변경의 야인 문제를 잘못 처리한 것 때문에 세종 18년(1436) 영의정부사 황희와 사헌부 등에게 탄핵을 받았다. 이후 세종이 그를 위해 만든 벼슬자리인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로 벼슬을 옮겨 그대로 북방문제를 담당하다가 세종 27년인 1445년 12월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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