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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이인좌(李麟佐)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6|조회수12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영조 때의 역신(逆臣). 이인좌의 난을 일으킨 인물

역적으로 낙인찍혀 전주 이씨 종친부의 족보에 이름이 지워져있고 가문도 제명처리되어 있다.

2. 생애

1695년 아버지 이홍덕(李弘德, 1667.1.12. ~ 1721.3.8.)과 어머니 창녕 조씨(1666. ~ 1750.) 사이에서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의 넷째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의 9대손으로 태어났으며 이인좌의 조부는 관찰사를 지낸 만연(曼衍) 이운징(李雲徵)이었다. 나중에는 윤휴의 손녀사위가 되었는데 과격한 남인 인사로서 소론이라 했지만 이인좌는 본래 남인이었다. 기사환국으로 득세했을 때 군권을 쥔 훈련대장으로 있던 이의징이 이인좌의 종조부였으며 이인좌의 할아버지 이운징은 그의 동생이였다. 신임사화로 득세하였으나 영조의 즉위로 소론이 몰락하면서 함께 실각했다.

이인좌가 역모를 구성할 때 준론인 김일경의 아들과 결탁하였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남인과 소론파를 규합하여 영조 4년인 무신년(1728년) 소현세자의 자손인 밀풍군 이탄을 추대하기 위해 박필현, 정희량과 함께 군사를 일으켰다. 그 후 청주성을 함락하고 이봉상, 홍임, 남연년 등을 죽인 후 대원수라 스스로 칭했으며 3월 23일 경기도 안성에서 도원수 오명항의 군사를 공격했지만 신기전을 쏘자 이에 놀라 죽산으로 도주했다.

그렇게 청룡산으로 물러났지만 오명항이 이끄는 군사가 산으로 올라 공격하자 이인좌의 군사는 결국 무너졌으며 그칠 줄 모르는 추격으로 갑옷과 투구를 벗어 내동댕이 친 채로 달아나 산 속의 어느 절에 숨어 들었다. 그러나 3월 24일. 결국 농민 신길만(申吉萬) 등 마을 사람들 24명과 승려들에 의해 붙잡혔다.

여러 장수들이 이인좌를 죽여 이인좌의 살점을 떼내 분풀이를 하려고 하자 오명항이 거짓으로 이인좌가 아닌 다른 사람을 죽인 뒤 그 가짜 목을 매달고 적괴 이인좌라고 했다. 진짜 이인좌는 함거에 실려 한성부로 압송되었고 1728년 3월 26일 친국에서 문초를 받다가 역모의 전모를 공술하고 1728년 3월 27일 대역모반죄로 군기시 앞에서 백관이 보는 가운데 거열형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인좌의 아내 윤자정 역시 연좌제에 따라 청주에서 교수형에 처해졌고 자녀들은 유배되었다.

각종 미디어에서 나름 카리스마있고 임팩트있게 묘사되는 것과는 다르게, 실제 역사에서는 반란군의 바지사장에 가까우며 굉장히 성품이 졸렬했던 인물로 보인다.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영조의 친국시점에서 어차피 반란군의 수괴급이니 죽을 것이 확실하고, 친국 시점 영남 지역에서 정희량등의 반란군이 여전히 저항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모든 반란군에 협조한 관리들의 이름 수백명을 다 먼저 대고, 그들이 모조리 체포되고 주살되도록 만들었다. 과거 조선의 정변에서 사육신 등이 살점을 뜯어내는 고문에도 불구하고 세조에게 극렬하게 저항했던 예들에 비하여 굉장히 쿠데타의 전모가 쉽게 드러났다. 그렇게 이름을 다 대고도 명색이 임영대군의 후손인데 바로 다음날 거열되어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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