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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김귀주(金龜柱)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6|조회수10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후기의 정치인

본관은 경주(慶州)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오빠이다.

김구주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김귀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한자를 음독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龜이라는 한자가 거북 귀, 땅 이름 구, 터질 균이라는 3가지 음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김귀주라는 명칭이 유명하지만, 본인이 생존할 당시의 조선 시대 사료에서는 공식 문서에서 주로 이름을 한문으로 표기했기 때문에 언문(한글) 표기한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명칭이라는 것이 시간에 따라 변하기도 하기에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으며 당대 기준을 중시한다면 김구주, 현대 기준을 중시한다면 김귀주로 읽으면 된다.

2. 생애와 주요 활동

민회빈 강씨의 신원을 주청하다 장살당한 김홍욱의 5대손이며, 오흥부원군(鰲興府院君) 김한구(金漢耉)의 아들이다. 정순왕후 김씨는 그의 누이이다. 문음(음서의 조선식 명칭)으로 입직했으며 문과에 급제한 뒤 더욱 순탄한 벼슬길을 걸어 좌승지에 이르렀다.

영조 37년, 사도세자가 평양에 몰래 여행 갔을 때 그는 강서 현령으로 나가 있었다. 그는 당시 평안도 관찰사 정휘량과 우의정 홍봉한이 세자를 말리기는커녕 이를 은폐하려 한다는 밀봉 상소를 영조에게 직접 올리려 했다.

임오화변 이후 문과에 급제한 그는 강원도 관찰사, 좌부승지 등을 역임하였으며, 외척당인 남당을 만들어서 당시 실권을 장악하던 북당의 홍봉한과 대립하였다.

이들은 세손의 외할아버지인 홍봉한을 탄핵하는데 주력해 공홍(攻洪)파라고 불렸다. 1770년 같은 남당인 정후겸, 김한기와 짜고 한유를 사주해 홍봉한이 세손을 제거하고 대신 은언군을 추대하려 한다고 영조에게 고변을 했다. 홍봉한은 곧 청주에 부처되었으나, 영조가 이내 며느리 혜경궁 홍씨를 위한다며 철회한다.

정조가 즉위한 직후 숙청당했다. 정조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병들었는데도 문안을 오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흑산도에 위리안치시켰다. 사실 이 부분은 정조가 김귀주와 정순왕후 김씨를 '배신'한 형태에 가깝다. 김귀주와 정순왕후는 세손 시절의 정조를 비호하면서 그 명분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었는데, 정조는 이것이 자칫 더 위험한 권신 세력으로 성장할 것을 우려해서 토사구팽한 것이다.

다만 정조 입장에서도 김귀주에게 불쾌할 만한 이유는 있었다. 홍본한이 사석에서 정조에게 사도세자를 추숭하지 않으면 무신년의 세력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고 이 사실을 정조가 정순왕후에게 알렸는데 이 얘기를 들은 김귀주가 홍봉한을 탄핵할 때 써먹었고 영조는 정조에게 진짜 홍봉한이 사도세자 추숭을 주장한 적이 있냐고 질문했는데 정조는 홍봉한이 사석에서 사도세자 추숭을 주장한 적이 없다며 거짓말을 하였다. 훗날 정조는 영조에게 거짓말을 한 사실에 대해 마음 속으로는 실로 죄송하고 부끄러웠다며 회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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