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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김유근(金逌根)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6|조회수10 목록 댓글 0

1. 개요

金逌根(1785년 3월~1840년 7월). 조선 후기의 문신, 정치가이다. 세도정치를 연 김조순의 장남이다.

2. 생애

1785년 김조순의 장남으로 태어나 1810년 식년시에 급제, 사서를 거쳐 검상(檢詳)이 되었다.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가 여동생이고, 남동생 중 세도정치의 마지막 집권자격인 김좌근이 있다.

1817년 이조 참의를 시작으로 대사성, 이조 참판, 대사헌, 한성판윤, 병조판서, 판돈녕부사 등의 고위 관직을 지냈다.

1832년 부친 김조순이 사망한 후 안동 김씨의 실권자가 되어 1830년대 중반 헌종 초기까지 안동 김씨 세도를 이끌었으나 1836~1839년 사이 중풍으로 쓰러졌고, 실어증에 걸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죽기 1년 전쯤 친분이 있던 천주교 신자 유진길의 권유로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고 알려져있으며, 1840년에 사망했다.

후사는 김홍근의 아들이었다가 양자로 들인 김병주(金炳㴤, 1827~1887)가 이었다. 김병주 역시 출세하여 규장각 직제학, 이조참판 등을 거쳐 흥선대원군 집권 이후에도 관운을 이어 이조판서까지 올랐다. 그의 가계는 손자 김정규(1862-1902)가 궁내부 특진관에 오르는 등 나름 이름을 떨쳤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서서히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해방 이후 시행된 농지개혁으로 위토를 제외한 모든 토지가 몰수되어 몰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3. 여담

1827년 평안도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부임 중 면회를 거부당한 전직 관원이 앙심을 품고 부임 행렬을 기습, 일행 가운데 사상자가 발생하자 부임을 포기하고 되돌아왔다. 인사 안 받아줬다고 안동김문의 장남에게 돌격하는, 조선시대판 묻지마 칼부림 비슷한 사건의 피해자였다.

상기했듯 말년엔 천주교 세례까지 받았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천주교에 꽤 호의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부친 김조순과 김유근이 조정 실권을 잡은 시기엔 조선의 천주교 박해도 한동안 누그러든다. 실제 관련 역사교수 논문을 보면, 안동김씨 정권기 천주교 박해를 막은 1등 공신은 정권의 실세인 김유근이었으며, 대표적인 사례로는 1836~37년 '남응중 반란사건'이 천주교와 연계되는 것을 차단하였다. 김유근은 죽음을 앞두고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천주교에 대한 그의 믿음이 돈독한 수준까진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그래도 그는 왕실과 가문의 번성, 자신의 생명에 대한 기복, 그리고 북학과 서양 골동에 대한 호기심으로 천주교에 호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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