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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정원용(鄭元容)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6|조회수11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후기의 문신, 청백리. 본관은 동래, 자는 선지(善之). 호는 경산(經山),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정조의 마지막 혈통인 헌종이 승하하자 정조의 이복동생들 중 유일하게 자손을 남긴 은언군 가문에서 왕통을 계승해야했다. 이에 영의정 정원용과 안동김씨는 철종의 사촌형인 26세의 익평군, 철종의 바로 윗형인 22세의 영평군, 19세의 이원범(李元範) 중 이원범의 옹립을 주장하여 철종으로 즉위하게 하였다.

조선의 성리학적 종법 질서에 의하면 이렇게 후계가 단절될 경우 종실의 최고 어른이 지명권을 가지게 되는데 당시 종실의 최고 어른은 명경대비(순원왕후)였다. 단순히 촌수와 항렬로 따지면 은언군의 장남인 상계군의 양자가 익평군이므로 서열 1위였고, 영평군은 은언군의 8남인 전계군의 차남이므로 서열 2위이지만 이런 경우 촌수와 항렬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철종은 영평군의 동생이었지만 명경대비(순원왕후)의 지명으로 왕이 될 수 있었다.

조선에서 마지막으로 원상을 지낸 인물이며,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 정광필의 직계 후손이다.

이름이 비슷하긴 하지만 한 세대 앞의 대학자 정약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애초에 본관, 아니 한자도 다르다.

2. 생애

대사간을 지낸 정계순의 손자이자 진주목사를 지낸 정동만의 아들로 태어났다. 순조 때 문과에 급제한 후 홍문관 부교리, 직각, 홍문관 부응교, 검교직각을 거쳐, 1819년(순조 19) 이조참의, 성균관 대사성, 사간원 대사간, 승정원 좌부승지, 호서외유사, 우승지, 1821년(순조 21) 영변부사, 관서외유사, 1827년(순조 27) 전라도관찰사, 대사간, 강원도관찰사, 1828년(순조 28) 이조참판, 세자시강원 좌부빈객, 1829년(순조 29) 규장각직제학, 1830년(순조 30) 회령도호부사, 사헌부 대사헌을 역임했고, 1831년(순조 31) 형조판서, 1832년(순조 32) 공조판서, 형조판서, 1833년(순조 33)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했다. 1836년(헌종 2) 병조판서, 1838년(헌종 4) 예조판서, 이조판서, 1839년(헌종 5) 예조판서를 역임했고, 1841년(헌종 7) 함경도관찰사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고, 1842년(헌종 8) 좌의정을 거쳐, 1848년(헌종 14) 영의정에 이르렀다. 1849년(철종 즉위년) 다시 영의정에 지냈고, 1851년(철종 2) 실록청 총재관을 지냈다. 재직 말년 시절 흥선대원군에게 협력하여 경복궁 중건에 앞장섰다.

3. 저서

세계에서 가장 긴 기간 동안 기록한 개인 일기라는 경산일록(經山日綠)이 바로 이 사람이 남긴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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