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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민승호(閔升鎬)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6|조회수19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후기의 관료, 척신

민치구의 둘째아들로 흥선대원군 부인인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남동생으로 고종의 외숙부인 동시에 명성황후의 양오빠가 된다. 민승호 암살 사건으로 사망한다.

2. 생애

1830년(순조 30년) 판돈녕부사를 지낸 민치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와 형이 있었는데 누나는 흥선대원군의 아내인 여흥부대부인 민씨이며 형은 민태호(閔泰鎬)이다. 아래로는 남동생 민겸호와 여동생이 있었다. 이후 1861년(철종 12년)에 11촌 아저씨이자 명성황후의 생부인 민치록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이에 따라 명성황후의 양오빠가 되었다. 1864년(고종 1년) 중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왕이 된 고종의 휘하 관료로 입문하게 되었고 1866년(고종 3년)에 양누이인 명성황후가 고종의 왕비가 되면서 이조참의를 지냈다. 이때 고종의 입장에선 외삼촌이 처남이 된 셈이다. 이후 호조참판, 형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냈다.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 국면에서는 친동생인 민겸호, 친척동생인 민태호 등과 함께 명성황후의 입장을 지지하였으며 1873년 흥선대원군이 실각되었을 때는 명성황후에게 공로를 인정받아 민씨 족당의 수령이 되었다.

"운현궁…"

― 민승호의 유언

그러나 1875년 1월 5일, 자택에 있던 중 한 수령이 보낸 선물을 받고 선물을 개봉하려는 중 폭탄이 터져서 그 자리에서 숨졌다. 동시에 일가족도 모두 그 자리에서 숨졌으며 이때 그의 양어머니 한산 이씨와, 민승호의 어린 아들도 함께 사망했는데 만약 이 폭살의 배후 조종자가 흥선대원군이 맞다면 흥선대원군은 자기 처남과 사부인을 죽인 셈이 된다. 폭사 이후 고종으로부터 '충정(忠正)'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모두 신봉승 작가가 극본을 쓴 KBS 풍운, 찬란한 여명 MBS 대원군 사극에서는 민승호가, 1873년 대원군 퇴진 이후 병조판서로서 권세를 부리며 매우 교만, 강경해지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리하여 한때 손을 잡았던 흥인군 이최응(흥선대원군의 친형)마져 냉대하고, 심지어 같은 일문인 민규호로부터도 비판, 질타를 받기에 이른다. 흥인군은 '장차 정승이 될 사람인데 그 정도야 연습삼아 해 볼 수 있는 것이지' 라고 말하자 민규호는 '어찌 병판(민승호)이 정승감이겠습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막을 것입니다. 될 성 싶지 않은 싹은 초기에 잘라버려야지요' 라고 대꾸한다.

'찬란한 여명' 드라마에서는 한 스님(박용식 배우 역)이 민승호 집에 선물을 전한다. 민승호가 대사께서도 보는 앞에서 선물 개함을 하겠다고 하자, 스님은 자신은 이만 물러갈 테니 어머님(양어머니 한산 이씨)께서도 보시는 앞에서 개함하면 큰 효도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급기야 민승호는 양어머니(안영주 배우 역) 와 어린 아들도 보는 앞에서 선물을 여는데 즉시 폭발하여 세상을 떠나고 집도 거대한 화염에 휩싸인다. 민규호(이상용 배우 역), 민겸호(서영진 배우 역), 효옥(김경아 배우 역) 등이 그 즉시 급히 달려와 이 광경을 목격하고.... 효옥은 어디론가 사라지는 수상한 스님의 뒤를 쫓을 것을 심복에게 지시하며, 민겸호는 즉시 입궐하여 고종 내외에게 이 소식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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