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여말선초의 인물.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제1차 왕자의 난 때 휘말려 죽은 인물이다.
2. 생애
본관은 부유 심씨(富有 沈氏). 고려조 금주지사 심인립의 아들로 전주에서 태어났고 1380년 성균시에 합격하여 1383년 을과에 제2인에 올라 당후관을 지내다가 장령이 되었다.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1383년 심효생과 함께 과거에 급제한 이들 가운데 김한로(양녕대군의 장인), 정역(효령대군의 장인), 그리고 태종 이방원이 있다. 이방원은 심효생과 동방인 셈이다. 하지만 같은 과거 급제 동기인 이숭인과 정도전의 관계처럼, 얄궂은 운명은 심효생과 이방원의 운명을 갈라 놓는다. 1391년 3월 문하사인을 지냈으며 1392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개국공신에 임명되면서 부성군에 봉해졌다. 이후 사헌중승에 임명되어 경상도로 파견되었고 경상도 안렴사를 지냈다. 1393년 3월 절제사를 각 도에 파견해 왜구의 침입을 방어할 것을 청했고 12월 대장군을 지내면서 태조의 명에 따라 계룡산에 새로운 도읍을 건설하는 것을 중지했다.
1394년 왕씨의 역모가 드러나자 1월 왕화, 왕거 등을 체포해 안동옥에 가두었으며 4월 첨절제사를 지내면서 왕씨 일족을 제거하기 위한 일로 손흥종과 함께 거제도에 파견되었다. 10월 이조전서를 지내다가 심효생의 딸 현빈 심씨를 세자빈으로 삼게 되자 외척이 되었다. 1395년 2월 중추원학사가 되었고 심효생의 부인 전주 유씨는 정경옹주가 되었다. 정경옹주의 친정 아버지는 유습(고흥 유씨 유습과 동명 이인)인데, 유습의 아들들 중 한 명이 하윤린(하륜의 아버지)의 딸과 결혼했다. 정리하면 하륜의 매부의 매부가 심효생이다. 9월 경상도 관찰사를 지내다가 12월 지중추원사에 임명되었고 이후 예문관 대제학에 임명되었다. 1397년 6월 남은, 정도전 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국경에 나아가려고 했지만 조준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7월 동지중추원사를 지냈고 태조가 김주, 김사행 등을 시켜 서경에 궁궐을 지으려고 하자 이를 간언해 중지하도록 했고 1398년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서 살해당했다. 하지만 표면상 남은, 정도전, 심효생 등의 죄명 자체가 역모죄가 아닌 '종친모해죄'였고, 심지어 남은은 태종 재위기에 태조 묘정 배향 공신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정도전도 그의 글들을 모은 문집 삼봉집이 후일 간행되는 것이 가능했고, 그의 증손자 정문형은 연산군 대에 정승까지 지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심효생의 아들 심도원은 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아 세종 때 판서를 지냈고, 심도원의 여동생 세자빈 심씨도 남편 이방석 사후 수십 년 동안 생존했다. 심효생의 외손자 - 세자빈 심씨와 방석의 아들(1398년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몇 개월 전에 탄생함)은 조선왕조실록에 탄생 기록만 적혀 있고 그 이후의 동향에 대해서는 일체 기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