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선 중기의 시인, 관료, 외교관, 그리고 허균과 허난설헌, 유형, 그리고 이정의 스승이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명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생전에 직접 시집을 간행하진 않았으며, 제자 허균과 제자 유형이 이달의 시를 모아서 간행한 시집 《손곡집》과 《서담집》이 전해진다.
2. 가족
손곡(蓀谷) 이달(李達)은 홍주인(洪州人) 13세손 부정(副正) 이수함(李秀咸)의 서자이다. 1614년(광해군 6년) 이수광(李脺光)이 편찬한 우리나라의 최초의 문화 백과사전인 《지봉유설(芝峯類說)》 권 9 문장부(文章部 2) 시평(詩評)에 의하면 "이달(李達)은 홍주인(洪州人)이다. 부정(副正) 이수함(李秀咸)이 고을의 기녀(妓女)를 축첩(畜妾)하여 낳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1618년 손곡(蓀谷) 이달(李達)의 제자 허균은 <손곡산인전>을 지으면서 쌍매당(䉶梅堂) 이첨(李詹)의 후손이라고 한다. 《고려사(高麗史)》 권 117 열전 권 30 제신(諸臣)에 기재된 이첨의 관향(貫鄕)에 관한 서술 및 《태종실록(太宗實錄)》 권 9 태종(太宗) 5년(1405년) 음력 3월 20일 기사에 수록된 이첨의 졸기(卒記)에 따르면 이첨은 홍주인(洪州人)이라고 하였다.
3. 생애
3.1. 생애 초기
손곡 이달의 고향 홍성에는 그와 관련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696년(숙종 22)에 편찬한 옛 결성현지 고적조에. "대동촌은 결성현 동쪽 25리에 있는데, 문인 이달이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홍성문화원에 의하면 이달이 태어날 때 "3일 동안 월산의 풀이 다 말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달은 이수함의 적자가 아니고 이수함과 홍주 관기의 아들이라서, 출세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시에 재능을 보이면서 송나라 시를 배웠으며 이후 스승 정사룡과 박순에게 당나라 시를 배웠다. 정사룡의 문하에서 두보(杜甫)의 시, 박순의 문하에서 이백(李白),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의 시를 배웠다.
3.2. 허엽 일가와의 인연
허엽의 아들 허봉과 친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허봉의 소개로 허난설헌과 허균을 만나서 시를 가르쳤다.
특히 허균은 스승 이달이 죽기 전까지 교류를 계속 한 것으로 보이는데, 1610년 시점 허균이 가르침을 부탁하면서 이달에게 한정록서(閑情錄序), 박씨산장(朴氏山庄), 왕총이기(王塚二紀), 십이론(十二論), 이절도뢰(李節度誄), 관묘비(關廟碑), 남궁생전(南宮生傳), 대힐자(對詰者)와 북귀부(北歸賦), 훼벽사(毁壁辭) 등 직접 쓴 저서를 보낸 적이 있으며, 이달이 허균의 시들을 읽고 교정을 봐준 적이 많았다고 한다.
3.3. 짧은 벼슬 생활
서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문과에 응시할 수 없었지만 조정이 그의 재능을 높이 사서 "중국어와 이문에 관한 일"을 하는 벼슬인 한리학관과 명나라 사신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 접빈사의 종사관으로 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벼슬을 버리고 떠나서 남은 여생을 시인으로서 살았다.
이에 대해 주변 지인들은 이달의 이런 삶을 부러워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달의 친한 친구 노수신(盧守愼, 1515~1590)은 이달에게 자신이 “벼슬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그만두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3.4. 아내와 사별
이름 불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허균이 《학산초담》을 쓴 1593년 시점 병에 걸려 죽었다. 학산초담에는 이달이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쓴 시 〈도망(悼亡)[8]〉이 남아 있다.
羅幃香盡鏡生塵 (깁 방장엔 향내 가시고 거울엔 먼지)
門掩桃花寂寞春 (닫힌 문엔 복사꽃만 쓸쓸한 봄날)
依舊小樓明月在 (작은 누각엔 옛날처럼 달은 밝은데)
不知誰是捲簾人 (발 걷고 달 즐길 이 그 누구런가)
— 도망(悼亡)
허경진의 허균평전 227쪽에 의하면 이달에게 이조판서 이선(李選)의 첩과 정을 통해서 낳은 아이가 있는데, 허균의 친구 이재영(李再榮, 1553~1623)이다. 이선의 첩이 위의 1593년 시점 죽은 아내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재영은 사실상 양반 가문의 서자와 다른 양반 가문의 판서의 첩과 정을 통해서 얻은 자식이므로 서자이자 사생아였던 것으로 보인다.
3.5. 최후
아내가 죽은 이후 죽을 때까지 평양부의 여관에서 얹혀살다가 돌연사했다.
현재 이달의 묘는 전해지지 않으며, 이달이 죽은 평양부 여관 터 근처에 무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충청남도 홍성읍 홍성군청 앞과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 손곡초등학교 입구에 그의 시비(詩碑)가 세워져있다. 홍성군 구황면 황곡리 하대마을 생가터에 안내판이 있으며, 하대마을 입구에는 한국 문인 협회 홍성군 지부와 홍주 이씨 종친회가 세운 시비(詩碑)가 있다.
4. 작품
작품으로 《손곡집(蓀谷集)》과 《서담집(西潭集)》이 있다. 손곡집은 제자 허균이 간행했으며 서담집은 이달의 제자 유형이 간행했다.
허균에 의하면 원래 이달 본인이 생전 직접 저술한 시가 수천 개였지만, 모두 흩어져서 남아있는 것이 없어서 제자 허균이 스승의 시를 전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허균은 평소에 외웠던 스승의 시 2백 여 수와 상사(上舍) 홍유형(洪有炯)의 집에서 130 여 수를 얻은 후 이재영의 도움을 받아서 시를 합해서 분류한 다음 여섯 권의 시집을 간행했는데 이 여섯 권이 현재 《손곡집》으로 전해진다.
5. 기타
제자 허균이 스승 이달을 주인공으로 한 한문 소설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을 지은 적이 있다. 이달이 작품 내 등장인물로 등장하며, 작가의 시점으로 주인공 이달의 생애를 관찰하며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