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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강희맹(姜希孟)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6|조회수7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전기의 문신, 화가, 농학자, 저술가.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

고사관수도를 그린 강희안의 동생이다.

2. 생애

1424년 한성부에서 강석덕(姜碩德)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447년(세종 29년) 문과 친시에 장원 급제하여 관직에 입문한 뒤, 이종사촌인 세조 때에 예조판서와 형조판서를 지냈다.

1463년,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파견 근무를 다녀왔다.

1468년(예종 원년) 남이(南怡)를 옥사와 관련한 공으로 이듬해 익대공신(翊戴功臣)에 책봉되었다. 1473년에 병조판서가 되었고, 이어서 판중추부사, 이조판서, 판돈녕부사, 우찬성을 역임한 뒤, 좌찬성의 자리에 올랐다.

말년에는 금양현의 자택에서 농사를 지으며 농서 금양잡록을 집필하였고, 1483년 세상을 떠났다.

3. 저작

저서

금양잡록(衿陽雜錄)

농구십사장(農謳十四章): 농요집(農謠集)

사숙재집(私淑齋集): 시문집

촌담해이(村談解頤): 기담집(奇談集)

그림

독조도(獨釣圖)

4. 여담

금천구 시흥4동 신흥초등학교 인근 주택가에 집터가 있으며 '강희맹 살던 곳'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경국대전의 편찬에 참가하여 주석을 달았는데 여기서 서얼을 등용하지 말라는 문제에 대해 자자손손(대대로)이라고 해석하여 후대의 서얼 출신들에게 크게 지탄 받게 되었다.

성종때 얼음을 채굴해 판매하는 사빙고 사업 허가를 받았는데, 강씨 가문은 영정조때까지 꾸준히 얼음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

병자호란 당시의 장수인 강진흔이 그의 6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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