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선의 지관(地官)이자 문신. 본관은 사천이고 호조참판 (戶曹參判) 목진공(睦進恭)의 후손이며, 남인(南人)의 서얼(庶孽)이다.
경종 때 신임사화의 빌미를 제공하였다가 연잉군(영조)이 왕으로 즉위되면서 투옥되었다가 죽었지만 경종 독살설은 오늘날까지도 회자(膾炙) 되고 있다. 사후 목호룡은 불명예로 낙인찍혀 사천목씨 종친부의 족보에 이름이 지워져 있고 가문에서도 제명 처리되어 있다.
2. 생애
경종 때 지관으로 등용되었으며 본래 남인 서자 출신이지만 처음에는 연잉군(영조)을 옹호하였다가 경종 2년(1722년) 소론파에 가담하여 노론파 대신들과 대립하게 되었고 소론 강경파 김일경과 함께 노론 대신들이 경종의 시해를 주도하여 연잉군을 왕좌에 앉히려 한다는 밀고를 하면서 노론 대신 숙청을 주도하여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이에 대한 공로로 경종으로부터 동성군(東成君)에 봉해졌으며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1724년(경종 4년) 경종이 승하하고 연잉군이 21대 영조로 즉위하자 영조의 어명으로 신임사화가 무고로 규정되면서 김일경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고문을 받다 감옥에서 죽었고 숭례문 밖 당고개(현 위치 용산구 청파로 당고개 순교성지) 서소문 밖에 효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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