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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김여물(金汝岉)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9|조회수8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인조반정 공신인 김류의 아버지 및 김경징의 할아버지. 시호는 장의(壯毅)

실록에 따르면 문반이면서도 용맹하고 무예가 뛰어났으며, 거기에 어느 정도의 지략과 식견까지 겸비한 용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류성룡과 신립 역시 그의 능력을 인정하였다고 한다.

2. 생애

1548년 황해도 평산도호부에서 찰방(察訪: 종6품)을 지낸 아버지 김훈(金壎)과 어머니 신천 강씨(信川 康氏) 강의(康顗)의 딸 사이의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위로 형 김여흘(金汝屹)과 아래로 동생 김여율(金汝㟳)이 있었다.

1567년(선조 즉위년) 식년시 생원시에 3등 3위로 입격하였고 1577년(선조 10) 알성시 문과에 갑과 1위로 장원급제하였다. 이후 병조낭관(兵曹郞官), 충주도사(忠州都事)를 지내다가 의주 목사(義州牧使: 정3품)로 있던 1591년 정철의 당여로 몰려 파직되어 투옥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의 명을 받고 신립 밑의 종사관으로 충주 방어에 나선 그는 조령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방어하자고 건의했으나 신립에게 묵살당했다.

이후 패색이 짙어지자 자책하던 신립은 김여물이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시간을 끌어주려 했으나 김여물은 "내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겠소"라고 호탕하게 거절하며 신립을 위로했다. 그렇게 비장한 작별인사를 나눈 둘은, 신립은 활을 쏘고 김여물은 도끼를 휘두르며 왜적 수십명을 쏴&쳐죽이다 함께 전사했다.

김여물의 최후엔 두 가지 버전이 전해지는데, 조선 측 사료에는 신립과 함께 남한강에 투신 자결하였다 기록되어 있으나 일본 측 기록인 회본태합기에 의하면 피칠갑을 한 채 "김여물이 여기 있다!"며 크게 외친 후 그대로 전장에 돌격해 도끼를 휘두르며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한다.

사후 아들인 김류가 인조대의 권신이 된 덕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순창부원군으로 추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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