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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김이주(金頤柱)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9|조회수5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후기의 행부사직, 대사헌,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광주부유수, 지돈녕부사, 판의금부사를 역임한 김노경의 아버지이자 추사 김정희의 할아버지이다.

2. 생애

1730년 (영조 6)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아버지 해주진관병마첨절제사 김한정(金漢楨)과 어머니 반남 박씨(潘南 朴氏) 금원군(錦原君) 박사익(朴師益)의 딸 사이에서 4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김이주(金頤柱)는 태어나자 마자 자식이 없었던 숙부인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과 화순옹주의 양자로 들어가 김한신(金漢藎)이 양아버지가 되었다.

1747년 (영조 23) 이후 17세 나이의 일찍이 해평 윤씨 윤득화(尹得和)의 딸과 혼인하여 김노영, 김노성, 김노명, 김노경을 두었다,

1771년 (영조 47) 지평(持平)을 거쳐, 이듬해 승지가 되었고, 1773년 영의정 김상복(金相福)의 상소에 의하여 광주부윤이 되었다. 1784년(정조 8) 독옥책관(讀玉冊官)으로 작헌례(酌獻禮)를 행한 뒤 승진되어 대사간이 되었다.

1785년 (정조 9) 대사헌이 되었으나 곧 교체되었다가 다시 대사헌이 되었고, 이듬해 대사간을 지낸 뒤 계속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790년 (정조 14) 행부사직 · 형조판서를 역임하였고, 죽은 직후 좌찬성에 증직되었다. 시호는 정헌(靖憲)이다.

그 후 1797년 (정조 21) 향년 67세 나이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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