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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김해(金澥)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9|조회수9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사회(士晦), 호는 운송(雲松), 설송(雪松).

2. 생애

1534년 충청도 공주목 우정면 경사동(현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 정사골마을)에서 통훈대부(通訓大夫:정3품 문관의 품계) 행 영흥도호부사(行永興都護府使:종3품)를 지낸 아버지 김반천(金半千)과 어머니 창녕 조씨 생원 조세우(曺世虞)의 딸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반천과 증조부 김수손(金首孫), 고조부 김신(金新)이 모두 문과 출신으로 관직에 나아갔던 명문가 출신이었다.

1558년(명종 13) 식년시 진사시에 3등 56위로 입격하고 1564년(명종 19) 식년시 문과에 을과 2위로 급제하였다.

1571년(선조 4) 선무랑(宣務郞:종6품 문관의 품계) 수(守) 형조 좌랑(정6품)으로 있던 중 명종실록 편수관(編修官)으로 참여했다. 1574년(선조 7) 사헌부 장령(掌令:정4품)에 제수되고 1576년 사간원 사간(司諫:종3품)에 제수되었다. 1582년(선조 15) 비위 사실이 발견되어 추고당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당시 상주목사(尙州牧使:정3품)로 있었는데, 당시 순변사 이일이 상주목에 당도했다는 것을 듣고는 순변사의 행차를 맞이한다는 핑계로 도주하여 인근 산골짜기로 들어가 숨어들었다. 이 때문에 상주 고을에는 서열 2위의 판관(判官:종5품)이었던 권길만이 남아 있었다. 이후 권길은 순변사 이일이 도착한 이튿날 저녁에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러나 은신하던 중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당시 별장(別將:종9품)으로 상주 갑장산(甲長山) 영수암(永修庵)에 진을 치고 있던 정기룡에게 급보를 올리고 임시 판관(假判官)에 임명한 뒤 합세하였고, 향병(鄕兵)을 규합하여 개령현에서 왜군을 격파하고 상주성까지 일시 탈환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이듬해 왜적에게 포위되어 항전하다가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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