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조선의인물

민영철(閔泳喆)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9|조회수16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대한제국기의 관료이자 군인

2. 생애

1864년 여흥 민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민영환과는 육촌 관계이다. 1885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한 후에 참의급 관료가 되었다. 이후 한성부 좌/우윤을 역임하였다.

1896년 황해도 관찰사 시절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죽였던 김구를 문초했다.

대한제국 시기에 민영철은 풍경궁 건설을 도맡았다. 초반에는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증건보다 빨리 공사가 진행되었지만, 민영철의 비리로 인해 점점 느려지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혈세 낭비 논란으로 좋은 의미에서 시작되었던 풍경궁 공사는 도히려 대한제국 정부의 이미지 추락에 크게 기여한다. 하지만 서경을 중건하는 것은 힘든일이라며 고종은 큰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 물론 제대로 된 비리가 밝혀지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시대이다.

민영철은 이후 1906년 국경을 넘은 죄로 면직되었다. 그의 비리는 비리로 유명한 또다른 민씨 민영휘를 능가할 정도였다. 이후 1911년 청나라에서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민영철에 대한 다른 주장도 있다. 일본의 작위를 거절하고 상해로 망명했단 것이다. 조선귀족 작위 거절자 8인 중에 민영철의 이름이 있진 않아서 확인되진 않았다.

3. 후손

민영철의 삼남인 민원식(閔瑗植, 1898년생)은 1910년에 민영철이 상해로 가족과 함께 망명했을 때 건너가서 프랑스에서 학교를 졸업했다. 툴루즈 대학 재학 당시에 파리에 대표단으로 온 김규식의 통역 비서관을 맡았다. 민원식은 윤영렬의 손녀인 윤시선과 결혼했고 광복 후에 귀국하여 영자신문인 Seoul Times를 설립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딸인 민경숙(閔敬淑, 1894-1937)은 대한민국의 2대 대통령인 윤보선과 결혼했으나 이혼했다. 민경숙은 아버지인 민영철을 따라 중국에 망명하여 소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다. 윤보선과는 장녀 윤완구(1915-2007), 차녀 윤완희(1918-2020)을 두었다. 즉 민영철은 윤보선의 첫 장인이 되는데, 윤보선의 나이로 볼 때 혼인 시기는 민영철의 사망 이후로 추정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