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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백인걸(白仁傑)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20|조회수5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자는 사위(士偉), 호는 휴암(休菴)으로, 본관은 수원이다. 이조참판, 대사헌, 의정부우참찬 등의 벼슬을 지냈고, 사후 좌찬성에 증직되었다. 저서 '휴암집(休菴集)'을 저술했다.

2. 생애

조광조의 문인으로 수학했고, 김안국에게도 학문을 배웠다. 이후 김식이 대사성이 되어 새로운 학풍이 일어나자 김식의 문하에서도 배움을 받았다. 일찍부터 당대의 사림계 인물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벗하다가, 중종 대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실의 속에 금강산에 은거하기도 했다. 이후 1531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537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였다.

중종 36년(1541)에는 남평현감(南平縣監)에 제수되었는데, 이때 학당(學堂)을 세우고 학장(學長)을 두는 등 지역의 교육에 힘쓴 공로로 품계가 높아졌다. 이후 천거를 받아 홍문록에 오르고 사간원헌납에 제수되었는데, 을사사화 때 문정왕후가 윤임, 유관, 유인숙 등을 숙청하려 하자 이를 비판하다가 파직당했고, 파주로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했다. 이때 이이와 성혼이 백인걸의 문하에서 함께 수학했다.

이후 정미사화에도 연루되어 안변으로 유배되기도 했다.

이후 1551년 사면된 뒤 고향에 돌아가 학문 연구에 전념하다가 윤원형이 몰락한 뒤 명종 20년(1565)에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로 복직하고, 1567년엔 양주목사에 제수되었다. 이때에도 많은 치적을 쌓아 백성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선조 원년(1568)에는 사림파를 대대적으로 복권, 등용시키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기대승의 건의로 대사간에 임명되었고, 병조·공조·호조참판을 지낸 후 대사헌을 제수받았다.

선조 11년(1578)에는 우참찬에 올랐고 같은 해에 기로소에 들어갔다. 선조 12년(1579)에는 이이와 함께 동서분당의 폐단을 지적하고 군비의 증강을 주장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에 병이 들어 선조가 직접 문병하고 약과 어의를 보내 주었지만 결국 83세로 졸하였다.

사후에는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선조 36년(1603)에 청백리에 뽑혔다. 인조 때 충숙(忠肅)의 시호를 받았다가 후에 문경(文敬)으로 개시(改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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