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영월 신씨(寧越 辛氏)이다.
관찰사를 지낸 신영손(辛永孫)의 차남이다. 중앙 조정에서 관리들의 비위를 감찰하는 언관직인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하였으며, 영안도 경차관(永安道敬差官)으로 파견되어 지방 행정 및 민생을 살피는 등 감찰과 실무 분야에서 활동했다.
북방의 야인(여진족) 정벌 당시 서정 종사관(西征從事官)으로 임명되어 평안도 만포(滿浦)에 출진하는 등 행정과 국방 실무를 겸비한 관료로 활약했으나, 생애 후반 조카 신윤무(辛允武)와 신윤문(辛允文) 형제의 옥사에 연좌되어 유배되는 정치적 부침을 겪기도 하였다.
2. 생애
2.1. 사헌부 지평 재임
당상관과 관찰사를 두루 역임한 부친 신영손(辛永孫)의 후광과 본인의 학문적 소양을 바탕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중앙 조정에서는 백관을 규찰하고 기강을 바로잡는 사헌부(司憲府)의 핵심 언관직인 지평(持平, 종5품)을 역임하였다.
조선 전기 사헌부 지평은 품계는 높지 않으나, 관리들의 비리를 탄핵하고 부당한 국정에 대해 직언(直言)을 올리는 막중한 자리였다.
2.2. 영안도 경차관 파견
중앙 언관으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임금의 특명으로 지방의 중대사를 처리하는 영안도 경차관(永安道敬差官) 임무를 수행했다. 영안도(永安道)는 지금의 함경도 지역을 일컫는 조선 전기의 행정 구역 명칭으로, 여진족과 맞닿아 있어 국방과 민생 안정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지역이었다.
경차관(敬差官)은 재해 구휼, 조세 감찰, 민원 조사 등 도(道) 단위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특수 사안이 발생했을 때 중앙 조정에서 직접 파견하는 특사 성격의 직책이다.
2.3. 야인 정벌
조선 전기 북방의 야인(여진족)을 토벌하기 위한 군사 작전이 벌어졌을 때, 서정 종사관(西征從事官)으로 임명되어 평안도 최전방인 만포(滿浦)에 출진하였다. 종사관은 군사 작전 시 지휘관을 보좌하여 군무(軍務)와 행정 실무를 총괄하는 참모 직책이다.
문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변방의 최전선에 파견되어 군사 작전에 참여한 것은, 그가 아버지 신영손(辛永孫)이 밀부(密符)를 하사받고 도(道)의 군사권을 행사했던 것처럼 국방 실무에도 밝은 관료였음을 보여준다.
2.4. 조카의 옥사 연좌와 방면
관료로 활동하던 중, 1513년(중종 8년) 조카인 정국공신 신윤무(辛允武)가 역모 혐의로 처형되고, 그의 형인 공신 신윤문(辛允文)마저 연좌되어 삭훈되는 옥사가 발생하였다. 대역죄의 연좌(緣坐) 규정에 따라, 이들의 친숙부(親叔父)였던 신중거 역시 동생 신계거 등 가문의 핵심 인물들과 함께 연루되어 관직을 잃고 유배(부처)되는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그로부터 약 4년이 지난 1517년(중종 12년) 11월, 연좌된 친족들에 대한 처벌이 과도하다는 중종의 판단에 따라 "신윤무의 동생과 삼촌을 다 놓아주라"는 특명이 내려지면서 마침내 유배에서 방면되었다.
3. 가족 관계
당상관과 관찰사를 지낸 아버지 신영손의 뒤를 이어 중앙 정계의 핵심 실무직에 진출하였으며, 형제인 신계거 역시 문과 장원 급제를 통해 가문의 위상을 높였다. 그의 딸은 나숙담(羅叔聃)과 혼인하여 조선 중종의 후궁인 숙의 나씨(淑儀 羅氏)의 적모(嫡母)가 되었다.
아버지: 신영손(辛永孫) - 14세. 세종 대 당상관 특지 승진, 세조 대 관찰사 역임
형: 신백거(辛伯琚) - 15세. 신영손의 장남
형제: 신숙거(辛叔琚) - 15세. 신영손의 3남. 신윤문, 신윤무의 아버지
동생: 신계거(辛季琚) - 15세. 신영손의 4남. 성종 8년(1477) 식년 문과 장원 급제. 사헌부 장령 역임
조카: 신윤문(辛允文) - 16세. 중종반정 3등 공신. 신윤무의 옥사에 연좌되어 삭훈 및 유배되었다가 방면됨
조카: 신윤무(辛允武) - 16세. 중종반정 1등 공신. 병조판서 역임. 1513년 역모 혐의로 처형
사위: 나숙담(羅叔聃) - 본관은 나주(羅州). 괴산 군수 역임
외손녀(수양): 숙의 나씨(淑儀 羅氏) - 조선 11대 왕 중종의 후궁
4. 평가
조선 전기, 사헌부 지평으로서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고 영안도 경차관으로서 변방의 민생을 돌보며, 서정 종사관으로서 만포 출진에 이르기까지 행정·감찰·국방 실무를 두루 겸비한 관료였다.
아버지 세대가 닦아 놓은 가문의 기반 위에서 문관으로서 중앙과 지방, 군사 작전 지역을 오가며 능력을 발휘하여 조선 초기 영월 신씨 가문이 조정의 핵심 사족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비록 조카 형제의 옥사에 연좌되어 시련을 겪었으나, 이후 방면되어 가문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 일조하였다.
5. 여담
신중거의 딸이 나숙담의 정실부인으로 들어가며, 그 남편의 서녀가 훗날 중종의 후궁인 숙의 나씨가 되었다. 비록 생모는 아니지만, 이는 당시 영월 신씨 가문이 다른 유력 사족들과 긴밀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