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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신회(辛回)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21|조회수10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영월 신씨(寧越 辛氏)

태종 대에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세종 대에 형조 좌랑(刑曹佐郞)과 연천 현감(漣川縣監)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사헌부 감찰 재임 중 관료 사회의 폐습인 '신귀(新鬼)' 놀이에 참여하여 파직되거나, 국구 심온(沈溫) 사건에 연좌되어 관직에서 물러나는 등 중앙 정계에서 여러 차례 정치적 부침을 겪었다. 이후 지방관인 연천 현감으로 복권되어 세종의 강무(講武, 사냥 겸 군사훈련) 행차를 수차례 보필하며 행정 실무를 수행했다.

2. 생애

2.1. '신귀(新鬼)' 사건

태종 14년(1414),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정6품)로 재직 중 파직되었다. 당시 감찰방(監察房)에는 새로 임명된 관원(신참)을 '신귀(新鬼)'라 부르며 강제로 잡희(雜戲)를 시키는 신참 괴롭히기 관행이 남아 있었다. 조정에서 이를 엄격히 금지했음에도 풍속이 근절되지 않았는데, 신회가 이 금령을 위반하고 신참의 집을 침범하는 행위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2.2. 심온 사건 연좌와 파직

이후 형조 좌랑(刑曹佐郞, 정6품)으로 재직하였으나, 왕조 교체기인 1418년(세종 즉위년) 12월에 발생한 심온(沈溫) 숙청 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파면되었다. 태종(상왕)이 주도한 외척 견제 과정에서, 신회가 형 신이(경기 경력), 동생 신헌(사복 직장)과 함께 과거 심온과 친밀하게 교류했다는 점이 파직의 사유가 되었다.

2.3. 연천 현감 재임

지방관으로 복권된 후 세종 대에 연천 현감(漣川縣監, 종6품)을 역임했다. 세종은 재위 기간 중 연천 일대의 가사평(加士平), 불현산(佛見山), 송절원(松折院) 등지에서 강무(講武, 사냥 겸 군사훈련)를 자주 진행했는데, 신회는 현지 수령으로서 세종 6년(1424), 세종 7년(1425), 세종 8년(1426)에 걸쳐 여러 차례 조복을 갖추고 임금을 맞이하며 행차를 보필했다.

세종 7년(1425) 3월 국왕의 연천 행차 당시, 신회가 뇌물로 쓸 물건(증회할 물건)을 몰래 은닉했다가 감찰을 담당하던 찰방(察訪)에게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찰방이 이를 추핵(推劾)하여 조정에 보고하였으나, 세종은 그를 처벌하지 않고 용서하는 처분을 내렸다.

3. 가족 관계

고려 말 공신이었던 조부 신렴의 뒤를 이어 형제들과 함께 조선 초기 중앙 관직에 진출하였다.

조부: 신렴(辛廉) - 고려 공민왕 대 밀직부사, 연저수종 3등 공신

동생

신이(辛頤) - 태종 대 경기 경력, 소윤 역임. 1418년 심온 사건으로 동반 파직

신헌(辛憲) - 사복 직장(司僕直長) 역임. 1418년 심온 사건으로 동반 파직

조카: 신영손(辛永孫) - 신이의 아들. 세조 대 충청도 및 황해도 관찰사 역임

4. 평가

조선 전기 중앙 언관직과 실무직, 지방 수령을 두루 거친 관료이다. 사헌부 감찰 시절의 폐습 가담, 심온 사건 연좌 등으로 중앙 정계에서 여러 차례 파직되는 등 순탄치 않은 관직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연천 현감으로서 국왕의 잦은 강무 행차를 무리 없이 보필하고 처벌 위기에서 특별 사면을 받는 등, 행정 실무 측면에서는 국왕의 일정 수준 이상의 신임을 얻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5. 여담

태종 14년(1414) 사헌부 감찰방의 '신귀(新鬼)' 놀이는 새로 부임한 관원에게 억지로 장난과 수모를 겪게 하던 고려 말부터 내려온 관료 사회의 악습(면신례)으로, 조선 초 기강 확립 과정에서 엄단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실록의 주요 사례 중 하나이다.

1418년 심온 사건 당시 동생 신이, 신헌과 함께 3형제가 동시에 파면된 기록은, 당시 이들이 심온 가문과 깊게 연관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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