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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김사형(金士衡)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2|조회수8 목록 댓글 0

1. 개요

여말선초의 관료,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정승이다.

2. 생애

고려 후기 원 간섭기 때 첨의중찬을 지낸 상락군(上洛郡) 개국공 김방경의 현손이고, 판삼사사 상락군 대광 김순(金恂)의 증손이자, 상락후 김영후(金永煦)의 손자이며, 밀직부사를 지내고 사후 보국숭록대부 영삼사사에 추서된 김천(金蕆)의 아들이다. 구 안동 김씨 익원공파(翼元公派)의 파조(派祖)이다.

조선 개국 직후 문하시랑찬성사로서 판상서사사(判尙瑞司事)와 병조 전서(典書)를 겸임하고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가, 이어 문하우시중 상락백이 되었다. 태조(1392~1398) 연간에 좌정승 조준과 더불어 우시중, 우정승으로서 국정을 운영하였다. 1396년(태조 5) 남재와 함께 대마도 정벌을 지휘했다. 1398년(태조 7) 조준과 함께 무인정사를 지지했다. 1401년(태종 1) 작위 제도 개정으로 상락부원군이 되었다.

1407년(태종 7) 죽고, 1410년(태종 10) 태조 묘정 배향공신 후보에 올랐으나 실제로 개국 모의에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하여 무산되었다.

3. 조준과의 관계

사극 등에서 얼굴을 비추는 편도 아니고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도 아니지만, 조선 개국 초기 조준을 도와 알게 모르게 역할을 끼쳤던 편이다.

조준이 좌정승이었던 시절, 우정승이 바로 김사형이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개국초기의 그 할일 많았던 시절에 8년을 같이 좌우정승으로 호흡을 맞춘 콤비였다. 모르긴 모르되 조준으로서는 실무 과정에서 가장 얼굴을 많이 본 사람이 김사형이었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성격은 정반대였는데, 강직한 성정인데다 태조의 신임을 바탕으로 실무에서 과감하게 일을 추진하고 워낙에 불도저처럼 밀고나가 이 과정에서 다소 비난도 받았을 정도의 사람이 조준이었다면, 김사형은 반대로 남에게 미움 살 일도 하지 않고 성격도 좋아 비호감 취급을 당하지도 않았으며, 관대하고 너그러운 성격으로 유명했다.

완전히 다른 두 정승은 기묘하게 궁합이 좋았는데, 김사형은 일단 크고 작은 일은 조준에게 전부 맡겨서 조준이 그 실무능력으로 착착 처리하게 하고, 김사형은 옆에서 이를 거들고 보좌하며 빠진 부분을 보충해주는 식이었다. 인간적인 부분에서도 조준이 일 잘하고 대신 옆에서 말 걸기 힘든 상사 느낌이라면, 김사형은 긴장관계를 옆에서 풀어주는 그런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김사형의 졸기에서

김사형이 조준과 더불어 8년 동안 함께 정승노릇을 하였는데, 조준은 강직하고 과감하여 거리낌 없이 국정(國政)을 전단(專斷)하고, 김사형은 관대하고 간요한 것으로 이를 보충하여 앉아서 묘당(廟堂)을 진압하니, 물의가 의중(依重)하였다.

라고 할 정도로 이 두 사람의 조합은 상당히 시너지가 좋았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졸기의 표현을 보면 당대에는 사람 좋기로 유명했던 듯.

김사형은 깊고 침착하여 지혜가 있었고, 조용하고 중후하여 말이 적었으며, 속으로 남에게 숨기는 것이 없고, 밖으로 남에게 모나는 것이 없었다. 재산을 경영하지 않고 성색(聲色)을 좋아하지 않아서, 처음 벼슬할 때부터 운명할 때까지 한번도 탄핵을 당하지 않았으니, 시작도 잘하고 마지막을 좋게 마친 것이 이와 비교할 만한 이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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