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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심의겸(沈義謙)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21|조회수16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방숙(方叔), 호는 손암(巽菴)·간암(艮菴)·황재(黃齋)·손재(巽齋).

세종의 국구 청천부원군 심온의 6대손으로 명종의 국구 청릉부원군 심강의 차남이며 김효원과의 대립으로 붕당이 만들어진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명종비인 인순왕후의 남동생이다. 선조에게 있어서는 법적 외삼촌이 된다.]

2. 생애

청릉부원군 심강과 어머니 전주 이씨 완산부부인 이씨 사이의 8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출생 후 9촌 숙부(삼종숙) 심홍(沈泓)에게 입양되었다. 일찍이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555년(명종 10년) 식년시 진사시에 3등 28위로 급제하고 1562년(명종 17년) 별시 문과에 을과 1위로 급제했다. 이량이 젊은 사림들을 자신의 권력욕으로 제거하려 하자 막기 위해 노력하고 선비로서의 명망이 높아졌다.

1573년(선조 6년) 김효원이 이조정랑 자리에 발탁되려고 했으나 심의겸은 김효원이 윤원형의 집에서 기숙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1574년(선조 7년) 결국 김효원은 이조정랑이 되고 1년 후인 1575년(선조 8년) 후임으로 심의겸의 동생인 심충겸(沈忠謙)이 추천되었으나 김효원은 '직분(이조정랑)이 왕의 외척인 척신의 것이 될 수 없다'고]반대하면서 둘은 대립하기 시작했다. 심의겸의 집이 궁궐에서 바라본 기준으로 도성 '서쪽 정릉방'에 있었고 김효원의 집은 도성 '동쪽 낙산 및 건천동'에 있어 '심의겸을 지지하는 서인'과 '김효원을 지지하는 동인'으로 갈라지며 당쟁의 시초가 되었다. 그야말로 붕당 정치의 시초를 제공한 인물이 된 셈이다.

1573년(선조 6년) 이조참의, 대사헌, 형조참판, 병조참판, 병조판서 등으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했으나, 1575년(선조 8년)에 심의겸의 누나 왕대비 인순왕후가 승하하고 동서분당이 발생된 이후로는 붕당 발생의 수괴이자 서인의 영수로 지목되어 개성부 유수, 전라도 관찰사, 함경도 관찰사, 전주부윤 등으로 외직을 전전하다가 다시 내직으로 옮겨 예조참판이 되었지만, 1584년(선조 17년) 심의겸과 서인을 변호하던 이이마저 죽자 서인은 동인의 공격으로 전원 다 유배를 가게 되는데 이때 심의겸은 유배간지 얼마 안되어 1587년(선조 20년) 5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심의겸의 묘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신산리에 있다. 같은 서인에 속하는 인물들인 율곡 이이의 묘는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성혼의 묘는 파주시 파평면 눌노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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