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선 전기의 천문학자이자 과학자.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성보(誠甫). 시호는 정평(靖平)
수학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정인지, 이천, 장영실 등과 함께 세종 시대를 이끈 대표적인 과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인지도가 낮은 인물이지만 알고 보면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1406년(태종 6) 경기도 양성현(현 안성시)에서 아버지 이맹상(李孟常)과 어머니 문화 류씨 류자(柳滋)의 딸 사이의 5남 2녀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생원시에 입격하고 동궁행수(東宮行首)로 있다가 1427년(세종 9) 친시(親試) 문과에 을과 2등 1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숭정대부(崇政大夫:종1품 문무관의 품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종1품)에 이르렀다.
이전까지 조선은 명의 역법(曆法)을 받아들여 사용하였으나 오차가 심하고 사용이 불편하였다. 이에 따라 1433년 독자적인 역법을 발명하라는 세종의 지시를 받고 이천을 비롯한 학자들과 함께 제작에 들어가서 1442년 조선의 독자적 역법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編)과 칠정산외편(七政算外編)을 편찬해 냈다. 칠정산 내편은 역대 중국 역법, 칠정산 외편은 아랍 역법을 참조해 만든 것이다. 그를 통해 조선은 천체의 운행을 한반도의 땅과 하늘에 맞춰 계산하게 되었다.
장영실이 개발한 혼천의, 간의, 자격루의 제작에도 참여하였으며 수학에도 능해 토지 측량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세조의 인지의 제작에도 기여하였을 것이다.
3. 기타
이순지가 칠정산을 만들고 있을 때 나라의 중요한 국책 사업인 역법 개발 사업에 인재들이 모여들지 않아 세종이 그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이순지가 답하기를 "진급이 느려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세종이 "그 일 하는 사람들 진급을 최대로 올려라. 그럼 되느냐?" 그러니까 이순지가 또 안 된다고 하면서 "일은 고되나 봉급은 적습니다" 그러자 세종이 답했다. "그럼 봉급만 올려주면 되느냐?" 이순지 왈 " 기관장의 직책이 낮은 것이 문제이옵니다" 그래서 세종이 얼마나 높으면 되겠냐고 물었더니 이순지는 당시 집현전 대제학을 지내고 있던 정인지를 지목했다. 세종은 허락했고 역법 개발 사업은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이순지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삼년상을 치르러 내려간지 4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세종은 이순지에게 복직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순지는 "5살 때까지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해서 어머니께서 유모도 없이 저를 키웠습니다. 그런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지금 벼슬이 웬말이십니까?" 라며 복직할 수 없는 이유를 담은 글을 올려 사양했다. 일단 세종은 이순지의 공백을 대체할 대체인력을 확보하라는 명을 내리면서 이순지의 글을 윤허할 수 없다며재차 복직명령을 내려 상중에 왕실로 들어와 다시 근무하게 되며, 훗날 이순지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도 기복을 명한다. 천문과 역법을 담당하는 자리에 앉은 능력있는 신하라는 특성상, 그리고 세종이 이 분야에 관심을 크게 갖고 있던 터라 정승급 신하도 아니건만 부모님 상을 당했을 때마다 기복 명령을 받은 특이한 기록.
지구설과 지동설을 주장하고 증명까지 했다는 낭설이 있다. 하지만 이순지가 쓴 천문류초(천상열차분야지도 해설서)를 보면 분명하게 천원지방과 천동설을 명시하고 있다. 이런 낭설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순지가 1427년 월식을 예측해서 지동설을 입증했다고 하는데, 일월식 계산 자체는 천동설로도 멀쩡히 할 수 있는 것이고, 이순지는 1427년 갓 과거에 급제했다.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학자인 홍대용의 지구지전설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이순지의 딸인 이씨와 가인 사방지간의 스캔들로 인해 가정을 제대로 관리 못한다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성종은 과거 세종대왕 시절의 이순지같은 학자들이 자기 대에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