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선 후기의 문신. 최후의 소론 영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이복원이고, 할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이철보(李喆輔)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6대조는 이조판서를 지낸 이명한, 7대조는 좌의정을 지낸 월사 이정구이다. 동생은 대제학과 6조의 판서를 모두 지낸 이만수이다.
당시 권신들을 일컫는 말로 천생오태사(天生五太史)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연안이씨 이만수, 대구서씨 서영보, 의령남씨 남공철, 안동김씨 김조순, 청송심씨 심상규를 일컫는 말로 이 시기에 정계를 움직인 핵심 인물들이다. 천생오태사(天生五太史)는 권세가 막강하여 감히 견제하기 어려워 이들의 권력을 빗대어 표현한 말로 하늘이 내린 다섯 태사라는 뜻이다.
2. 생애
1773년(영조 49) 문과에 급제하였다. 성균관 대사성, 사간원 대사간, 이조 참의, 황해도관찰사, 개성부 유수,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병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지냈다. 정조 때 우의정을 역임하였고, 순조 때에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사후 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1804년(순조 4) 정순왕후의 재수렴 시도를 논리로 압도하면서 저지하여 명성을 얻었다. 정순왕후가 섭정을 풀고 정권을 순조에게 넘겼다가 재차 수렴청정으로 권력을 쥐려 욕심을 부렸다. 이에 좌의정 이시수는 대의를 내세워 정순왕후의 재섭정은 정도를 벗어난 명분없는 욕심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해서 수렴청정을 막았다.
3. 여담
할아버지 이철보(李喆輔)와 작은할아버지 이길보(李吉輔)가 함께 기로소에 들어간 데 이어서 아버지 이복원(李福源)과 이시수(李時秀) 본인도 모두 기로소에 들어갔다. 이로써 삼세입사[2]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