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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이충걸(李忠傑)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23|조회수9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전기의 문관, 본관은 장수, 호는 율탄정(栗灘亭)

2. 생애

1465년, 남해현 이동면 초음리에서 이구경(李九經)과 진주 정씨의 장남으로 탄생했다. 1486년 식년시를 보아 병과 10위로 급제하여 예조정랑에 임명되었다. 1491년에는 사간원 승지, 1495년에는 중추부사에 임명되며 관직 생활을 이어갔다.

1504년, 사간(司諫)에 임명되고 얼마후에 동부승지(同副承旨)로 특배(特拜)되면서 연산군이 이충걸(李忠傑)의 傑자가 이세걸(李世傑)의 傑자와 같기에 純자를 하사하여 이충순(李忠純)으로 강제로 개명시켰다. 이후 좌부승지(左副承旨), 승정원 좌승지 등을 지내오다가 1505년, 겸 동지춘추관사(兼同知春秋館事)에 임명되었고 주문사(奏聞使)로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적이 있다. 1506년에 전주부윤을 지냈다.

1508년, 이충걸이 일찍이 경상우도 절도사(慶尙右道節度使)가 되었을 때, 영군(營軍)과 진주, 곤양군의 군인을 사용하여 진주(晉州)에 집을 지었는데, 그 후에 물론(物論)이 한창 일어나자 "사위의 집이다."라고 거짓말을 하였고 사헌부에서 추문하기를 청했으나 중종(조선)은 이미 파직된 사람이라며 처벌하지 않았다.

1510년, 대사헌과 전라감사를 역임하였고 1513년에는 병조참판에 임명되었다. 1513년에는 함양 군수를 역임했다.

1527년에 사망했다.

3. 기타

《남해군읍지(南海郡邑誌)》《남해현읍지(南海縣邑誌)》《남해읍지(南海邑誌)》에서 청현관(淸顯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김구가 쓴《자암집(自菴集)》에서는 이충걸과 함께 매를 쏘았던 일을 시로 쓴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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