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선 초기의 관리
인수대비의 사촌 오빠로 외척이며 연산군 때 영의정을 지냈다. 성준, 이극균과 함께 연산군의 탈선을 막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2. 생애
한확의 조카이자 인수대비의 사촌 오라버니로, 월산대군, 명숙공주, 성종의 외당숙이기도 하다. 또한 세조의 측근이자 공신인 한명회와는 10촌간이다. 왕실과 깊은 인척 관계를 맺었으며 집안 역시 명문가였다. 더불어 그의 고모들이 명나라 황실의 후궁으로 들어가면서 명나라 황실과도 인연이 닿았다. 사촌 형제인 한치의와 한치례 또한 모두 고위 관직을 지냈다.
음서로 관직에 진출했고 사헌부, 사복시, 사온서 등 여러 관청을 거쳐 세조 말년에는 승정원의 우부승지, 좌부승지, 우승지, 좌승지를 역임하였다. 이후 장례원판결사, 동지중추부사, 이조참판, 호조참판 등을 지냈으며, 예종 대에는 다시 호조참판으로 재임하였다. 이어 명나라에 책봉주청사로 파견되어 사신 임무를 수행하였다.
성종 즉위 후에는 좌리공신 3등에 책록되어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진봉되었고 대사헌과 형조판서를 지냈다. 인수대비의 사촌 오라버니로서 성종 시대의 전성기를 이끌어가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어 개성유수, 경기도관찰사, 한성부판윤, 공조·형조·호조·병조의 판서를 차례로 역임하였으며 의정부좌참찬에까지 올랐다.
연산군 즉위 이후에는 의정부우찬성, 좌찬성을 거쳐 우의정으로 정승 반열에 올랐다. 무오사화 때에는 김일손과 김종직의 제자들을 엄히 국문할 것을 주장하고 김일손의 처형에도 동의하였다.
이후 좌의정을 거쳐 1500년에 영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영의정 재임 중 좌의정 성준, 우의정 이극균과 함께 연산군에게 충언을 올렸다가 연산군의 미움을 받았고 1502년에 세상을 떠났다.
사후인 2년후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한치형은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를 폐출하는 데 가담했다는 이유로 한명회, 정창손, 정인지 등과 함께 부관참시를 당하였다. 그와 함께 충언을 올렸던 성준과 이극균 또한 모두 죽임을 당했으며 측실 소생의 아들 한수는 참형에 처해졌고 사위 역시 유배되었다. 그러나 중종반정 이후에 신원이 이루어졌다.
3. 평가
외척이었으나 성품이 순박하고 침착하며 말수가 적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관직에 있을 때에는 부지런하고 신중하였고 연산군 대에는 임금을 바른 정치로 이끌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한 비운의 충신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