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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김근사(金謹思)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3|조회수4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명통(明通)

2. 생애

1486년(성종 17)에 식년시 생원시에 100명 중 3등 83위로 입격하였고, 1494년(성종 25) 별시 문과에 병과 9위(14/22)로 급제하였다. 연산군 때 연산군의 눈밖에 나서 귀양을 갔다가 중종반정 이후 복귀했다. 1530년(중종 25)에 대사헌으로 있을 때 대사간이던 권예와 함께 심정, 이항, 김극핍의 사사 또는 삭탈관직을 주청해서 관철시켰고 김안로의 복귀를 도왔으며 1531년(중종 26) 5월 병조판서, 동년 7월 이조판서를 거쳐, 1532년(중종 27) 판의금부사로 승진하였고, 동년 12월 좌찬성이 되었다. 1533년(중종 28) 우의정, 1534년(중종 29) 좌의정, 1535년(중종 30) 영의정을 지냈다. 김안로(金安老)와 가까웠기에 영의정이 되었고, 매사에 김안로에게 호응하여 사류(士類)를 물리치는 데 모든 간계를 다하였다. 김안로가 패하자 영의정 자리를 며칠 더 지키긴 했으나 이후 대간들의 탄핵으로 경상도 하동으로 쫓겨났다가 김안로와 달리 사약은 면한 뒤에 1539년(중종 34) 6월에 병사하였다.

3. 기타

실록에서는, "외모는 순박하고 충실한 듯하나 마음은 음흉하였다."라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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