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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홍언필(洪彦弼)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3|조회수24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청백리였다.

2. 생애

1476년(성종 7) 음력 7월 12일 승정원 우부승지를 지낸 아버지 홍형(洪泂, 1446. ~ 음력 1500. 11. 25.)과 어머니 한양 조씨 조충손(趙衷孫)의 딸 조씨 사이의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495년(연산군 1) 증광 진사시에 3등 31위로 입격했으나,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휘말려 유배당했다가 1506년(중종 1)에 중종반정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1507년(중종 2) 증광 문과에 을과 1위로 장원급제했다.

1526년(중종 21)엔 형조판서로 임명되는데, 이후 대사헌, 이조판서, 호조판서, 병조판서, 공조판서를 거쳐서 우찬성이 되었다. 1535년(중종 30)에 김안로의 모함으로 파직된다. 하지만 김안로가 실직한 뒤 다시 관직에 복귀해 호조판서로 임명되었다. 이후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서 1544년(중종 39)에 영의정이 되었다.

영의정에 임명된 지 5년 후인 1549년(명종 4) 음력 1월 28일에 사망했다.

3. 여담

그의 장남 홍섬(洪暹, 음력 1504. 9. 10. ~ 1585. 2. 11.)도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그는 평소에 몸가짐이 검소하고 화려한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청렴하며 처신과 자기관리를 잘 지키는 올바른 삶을 살아왔고, 그 외에도 자식교육도 상당히 엄격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3가지가 있는데, 아들 홍섬이 젊은 나이에 판서가 된 이후 초헌(軺軒)을 타며 거리를 돌아다니자 아내는 기뻐하며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렸는데, 홍언필은 축하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홍섬을 화난 목소리로 집으로 불러낸 뒤 홍섬에게 "높은 자리에 올랐다면 항상 겸손해야 하는데 대감은 어째서 이렇게 나잇값을 못 하고 방탕하게 사는 것이오?"라고 호된 목소리로 지적하자 홍섬은 용서를 빌었고, 이어서 "그럼 다시 한 번 초헌을 타 보시오! 벽제(辟除) 소리 또 크게 울려 보시오!"라고 비꼬는 태도로 말하자 홍섬은 초헌 위에 올라 벽제를 울리며 집 마당을 돌았고, 홍언필은 뒷짐을 지고 맨발로 미투리 신발을 신고서 그 뒤를 묵묵히 따라다녔다가 귀가했다. 홍섬은 본인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거리를 했는지를 깨달았고, 그와 함께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푹 숙이며 실로 몸둘 바를 몰랐고, 이후부터는 홍섬도 언행을 조심하여 다시는 위세를 부리는 일이 전혀 없었으며, 후에 그의 벼슬이 아버지처럼 영의정까지 올랐다. 홍언필 본인이 몸소 꾸지람과 창피한 행동을 보여 아들 홍섬에게 경고한 셈이다. 또한 홍섬이 젊었을 때는 계집종을 건드리는 악취미가 있었다. 어느 날 밤 홍섬은 아내가 취침에 들어간 틈을 타 나체 상태로 몰래 방을 나와 마루의 계집종들 사이를 기어다니며 점찍어두었던 아이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부친 홍언필이 잠에서 깨 그 모습을 보고는 아내 송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이 다 장성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막 기어다니는 법을 배우고 있구려!"라고 초헌 사건 때처럼 비꼬았다. 홍섬은 이를 듣고 부끄러워 달아나 다시는 절대로 계집종들에게 껄떡대지 않았다. 몇 년 후에는 영의정이 된 홍언필이 환갑을 맞아서 환갑잔치를 치르게 됐는데, 집안 사람들이 광대와 기생까지 불러 큰 잔치를 열었지만, 홍언필은 오히려 홍섬의 예전 언행들을 문제 삼았듯이 언짢은 기색을 지으며 "내가 이렇듯 높은 벼슬에 올라 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항상 마음 속으로 경계하고 삼가는 것을 잊지 않았기 때문인데 환갑을 맞아 기생들과 광대들을 불러 크게 한 번 놀고 있으니 이는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며 광대들과 기생들을 다 퇴장시켰다.

그의 사위였던 윤진이 중종과 내외종사촌 관계였다고 한다. 윤진의 아버지는 윤탕로인데, 윤탕로는 성종의 부인이자 중종의 어머니인 정현왕후의 오빠이다. 그래서 홍언필과 중종은 겹사돈 사이가 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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