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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류관(柳灌)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3|조회수10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중기의 문신. 윤임, 류인숙과 함께 대윤의 일원이자 수장이었으며, 인종을 지지했고 을사사화 때 목숨을 잃었다. 인종 때 좌의정을 지냈다. 자는 관지, 호는 송암이다. 시호는 충숙. 본관은 문화

조선 초기 세종대왕 때 우의정을 지냈던 하정 류관과는 동명이인이다. 그 쪽도 본관이 문화이다.

2. 생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세자시강원의 관직을 두루 지냈고 이조정랑을 하기도 했다. 붕당으로는 온건사림파였고, 조광조 일파와는 대립 관계였으며 중종이 조광조 일파를 몰아내기 위해 일으켰던 기묘사화 때는 사헌부집의로 적극 협조했다.

이후 승정원의 동부승지에 올랐고 강원도, 황해도, 전라도, 경상도의 관찰사, 사간원의 대사간, 승정원의 우부승지를 지냈으며 이후 한성부의 좌, 우윤, 병조참판, 첨지중추부사, 사헌부의 대사헌, 경기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이후 예조판서, 호조판서, 병조판서, 지중추부사를 지냈고 형조판서가 되었는데 성품이 곧고 강직하고 올바르고 청렴하여 이 시절에 외척이자 최강의 권신이자 손꼽히는 간신인 김안로와 그의 당여인 채무택이 청탁을 해오자 그것을 거절했고 이로 인해 파직된 적이 있었다. 김안로가 사사된 이후 복직하여 공조판서가 되었고 우찬성을 거쳐 다시 형조판서가 되었으며 이후 다시 사헌부대사헌으로 옮겼다. 이후 우참찬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가 다시 우참찬으로 옮겼다.

다시 이조판서를 제수받은 뒤에는 이기가 탐관오리의 사위임을 밝혀서 그의 병조판서 임명을 강력하게 반대했고 이후 다시 병조판서로 옮겼다. 이후에는 우찬성과 좌찬성을 지냈다. 이 즈음에 윤임, 류인숙과 함께 대윤의 일원이 되었으며 인종을 지지했다.

이후 외직인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좌찬성으로 내직에 들어왔다. 그러나 곧 다시 외직인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

인종 즉위 후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이 되었고 대윤의 영수로 군림했으며 인종을 잘 보필했다. 하지만 인종이 9개월 만에 승하하고 명종이 즉위했다. 이후에 그는 고명대신의 자격으로 원상이 되었으며 문정왕후의 남동생인 윤원로를 탄핵해서 귀양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정왕후의 미움을 받아서 판중추부사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후 윤임, 류인숙과 함께 문정왕후와 윤원형, 이기, 정순붕, 임백령, 허자, 최보한 등이 주도한 을사사화에 연루되어서 귀양을 가다가 도중에 사약을 받고 사망한다. 정미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했다.

선조 즉위 후 신원되었으며 영조 때 충숙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3. 평가

성품이 곧고 강직했으며 매우 대쪽같고 청렴했다고 한다. 형조판서 시절에는 최강의 권신이자 간신인 김안로와 그의 당여인 채무택의 청탁을 거절했으며 이조판서 시절에는 이기가 탐관오리의 사위임을 이유로 그의 병조판서 임명을 반대했다. 하지만 윤원형과 소윤의 눈밖에 나고 그의 핵심인 이기와의 악연으로 을사사화 때 억울하게 희생당한 충신이라고 할 수 있다.

4. 여담

대윤의 거물급 대신이자 영수였고 좌의정까지 지냈지만 사극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여인천하에서 단역으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류관과 함께 대윤의 거물이던 류인숙은 조광조 일파 출신이며 기묘사화 당시에 관직을 잃고 오랫동안 야인생활을 하다가 김안로가 사사된 이후 복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중종의 친위쿠데타인 기묘사화를 도운 사람이 류관이었던 것이다. 즉, 기묘사화 때 중종의 친위쿠데타에 협조했던 사람과 기묘사화 때 파직되었던 사람이 서로 같이 한솥밥을 먹게 된 것이다.

윤원형과 함께 을사사화를 일으킨 정순붕의 죽음에는 류관의 여종 갑이와 관련된 야사가 전해져 내려온다. 구체적 내용은 없고 온 문서에 이런 야사가 있다더라만 써있을 뿐이다.

5. 가족 관계

사헌부장령을 지낸 류정수의 아들이다. 부친 역시 무오사화 때 귀양을 간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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