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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성세창(成世昌)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3|조회수14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인종 때 우의정, 명종 때 좌의정을 지냈다. 하지만 을사사화에 연루되어서 귀양을 간 뒤에 귀양지에서 사망했다. 본관은 창녕, 자는 번중, 호는 돈재. 시호는 문장. 예조판서 성현의 아들이며 좌참찬 성임의 조카이다. 김종직의 문인이었던 김굉필의 문인이고, 이심원의 문인이기도 하다.

2. 생애

연산군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했지만 갑자사화 때 아버지 성현이 부관참시를 당하면서 성세창 또한 이에 연좌되어 영광군으로 유배되었다. 하지만 중종반정 이후 석방되어서 사직서참봉에 제수되었다.

이후 중종 때인 중종 2년인 1507년에 치러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승문원에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홍문관정자로 옮긴 뒤에 홍문관에서 저작, 부수찬, 수찬, 교리, 사간원의 정언, 헌납, 사간, 성균관의 박사, 전적, 사성, 사헌부의 집의, 의정부의 검상 등 여러 관직을 했고 예조좌랑, 이조정랑 등과 군기시첨정도 거쳤다.

이후 선공감, 군자감, 봉상시의 부정과 사도시정을 거쳐 홍문관의 직제학에 제수되었고 동부승지로 당상관에 올랐다. 이후 좌부승지로 옮겼다가 공조참의, 예조참의를 거쳐서 첨지중추부사로 있다가 병으로 잠시 사직했는데 이로 인해서 중종이 일으킨 친위쿠데타인 기묘사화 때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김굉필의 문인이었고 조광조와도 친하게 지냈지만 온건사림파에 속했다.

이후 다시 중용되어서 강원도관찰사, 형조참판, 전라도관찰사, 경상도관찰사, 첨지중추부사, 동지중추부사, 성균관대사성, 이조참판, 예조참판, 함경도관찰사, 사헌부대사헌 등을 두루 했고 홍문관부제학까지 하지만 당시에 최강의 권신이자 손꼽히는 간신이던 김안로의 복귀를 반대했다가 벼슬에서 쫓겨나고 평해군으로 유배되었다.

김안로가 쫓겨나고 사약을 받은 뒤에 한성부우윤으로 복귀했고 공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이후 우참찬, 형조판서, 홍문관제학 등을 두루 했으며 이조판서로 옮겼다가 대사헌에 다시 제수되어서 세자우빈객을 겸했고 예조판서, 좌참찬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가 다시 이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를 했고 홍문관과 예문관의 양관 대제학까지 했다. 연달아서 호조판서에도 제수되었고 연달아서 우찬성을 거쳐서 좌찬성까지 되었다.

인종 즉위 이후 우의정이 되었는데 인종을 잘 보필했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인종 승하 후에 명종이 즉위하자 홍언필, 윤인경 및 윤임, 유관, 유인숙 등과 함께 윤원로의 탄핵을 주도했고 이후 좌의정이 되었지만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윤임의 일파로 몰렸고 윤원형, 이기, 정순붕, 임백령 등에 의해 한직으로 내몰렸다가 파직되었다. 이후 파주의 별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윤원형 일파에 의해 계속 공격당한 뒤에 1546년에 결국 장연현에 유배되었고 사약은 겨우 면한 뒤에 1548년에 유배지에서 사망한다.

선조 때 신원되었으며 숙종 때 문장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3. 여담

아버지 용재 성현도 대제학을 했고 성세창 자신도 대제학을 함으로써, 부자가 대제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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