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선 중기의 문신
2. 생애
윤원형과 함께 문정왕후 시대를 대표하는 간신. 윤원형과 엮어 이흉이라고 불렸다.
1496년(연산군 2) 식년시 진사시에 3등 56위로 급제하였으며, 1501년(연산군 7) 종9품 전력부위(展力副尉)로서 식년시 문과에 3등 15위로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1526년(중종 21) 중추부 동지사를 역임할 때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고 1537년(중종 32)에 예조 참판이 되고 이후 한성부판윤에 올랐다가 공조판서, 형조판서, 병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지냈는데 병조판서로 임명될 즈음에 이조판서였던 유관의 반대로 병조판서에 오르지 못한 적이 있었다가 이언적의 도움으로 겨우 형조판서에 올랐고 5년 후에는 순변사 도원수가 되며 이후 우찬성, 좌찬성이 되었다가 인종 즉위 후에 우의정이 되었으나 대윤 세력의 반대로 판중추부사로 좌천되었다가 형조판서를 거쳐 1545년(명종 즉위)에 병조판서에 있다가 다시 우의정에 올라 윤원형과 손잡고 을사사화에서 대윤의 세력을 꺾었다. 이후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된다. 1552년(명종 7) 사망한다. 당시 그를 향한 탄핵이 빗발치던 시기라 명종의 결단 한번이면 화를 입을만한 상황이었는데 딱 타이밍 맞게 고통없이 자연사했다.
이기의 동생은 권신 이행으로 심정의 편을 들어 김안로를 공박하다가 역으로 당해 유배지에서 형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여담으로 본관이 덕수 이씨라서 율곡 이이의 6촌 재종조부(할아버지의 사촌)이다.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가 이기와 가까이 지내다가 아내 신사임당의 충고를 듣고 이기를 멀리한 덕분에 후일 윤원형, 이기의 세력이 몰락한 후에도 무사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문과에 급제한 문신인데도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나 정랑, 좌랑의 관직을 하지 못하고 무관직과 외관직을 했다는 것이 꽤 특이한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여담으로 대윤의 거두이자 영수였고 좌의정을 지냈던 유관과는 병조판서 시절에 악연이 있었는데 당시 이조판서였던 유관이 이기의 병조판서 임명을 두고 강력하게 반대했는데 이게 악연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기는 을사사화 때 윤원형과 손잡고 유관을 죽인다. 그 외에도 조광조 일파이자 대윤의 거두였던 유인숙은 이기와 고종사촌 간이었지만 유관의 편을 들어 이기의 병조판서 임명을 반대했고 결국 을사사화 때 이기한테 보복을 당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또한 친조카였던 이원록과 오촌생질이던 구수담도 이기에 의해 유배를 가거나 죽음을 맞이했다. 또한 순변사 시절 자신의 휘하에 있던 김진종도 역시 유배를 보냈다. 그 뿐만 아니라 명신으로 이름났던 이준경, 이윤경 형제와도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병조판서에 있을 때 휘하에 병조참판으로 있던 신영과도 사이가 좋지 못했고 신영은 후에 대사헌이 되어서 이기를 탄핵한다.
의혜공주의 남편이자 명종의 누나이자 중종의 부마인 한경록과도 가까운 인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