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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정순붕(鄭順朋)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3|조회수13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윤원형, 이기와 함께 을사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본관은 온양, 자는 이령, 호는 성재.

2. 생애

중종 때 문과에 급제를 했고 본래는 조광조의 일파로 한전제를 주장하는 등 급진사림파 행보를 보였다. 승정원의 동부승지, 우부승지, 좌부승지, 충청도관찰사를 거쳐서 형조참의에 이르렀지만 중종이 주도한 친위쿠데타인 기묘사화 때 파직되면서 오랫동안 야인생활을 했다.

1531년에 영의정이던 정광필에 의해 그의 복권이 논의되었지만 실패를 했고 김안로가 사약을 먹고 죽은 뒤인 1538년에 복권되어서 다시 조정에 나갔다. 이후 경기도,강원도의 관찰사, 대사성, 공조,병조의 참판, 한성부우윤, 형조판서, 호조판서, 우참찬, 대사헌 등을 지냈다.

이 시기에 그는 대사간이던 구수담과 함께 대윤과 소윤을 모두 비판하는 행보를 보였다. 인종 즉위 후에는 형조판서를 거쳐서 우참찬에 제수되었으나 대윤세력에 의해 지중추부사로 밀려났다. 하지만 명종 즉위 후에 다시 공조판서에 제수되었고 문정왕후, 윤원형, 이기 등과 함께 을사사화를 일으켜서 윤임, 류관, 류인숙 등을 사사하게 만들었고 사림파들과 대윤 인사들을 축출하거나 죽이는 행보를 보이면서 완전한 소윤이 되었고 위사공신 1등에 봉해지며 온양부원군에 진봉되었고 우찬성에 올랐다.

이후 우의정에 올랐고 정미사화 때도 남은 대윤 인사들과 사림파들을 축출하는 짓을 저질렀다. 하지만 1548년에 사망한다.

선조 때 관작과 훈작이 추탈되고 시호도 추탈되었다.

3. 평가

처음 관직에 나섰을 때는 조광조 일파로 명망이 높았던 사람이었으나 야인생활을 오래 겪은 이후에 권력을 탐하게 되어서 흑화했고 을사사화와 정미사화를 일으켜서 선비들을 죽임으로써, 소인배로 전락했는데 급격히 타락했다고 볼 수 있다.

4. 여담

정순붕은 정작, 정현, 정렴의 아버지이기도 한데 장남 정렴은 도가에 능통하고 학문에도 능통해 명망이 높았지만 아버지의 행보에 실망하여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다고 한다. 반면 그 동생인 정현은 노비로 변장하여 대윤 인사들을 정탐하는 등 아버지를 적극 도왔고, 형 정렴이 아버지의 행보를 말리자 분노하여 칼을 들고 형을 죽이려다 아버지 정순붕이 고함치며 말려서 그만두는 등 자식들의 사이는 별로 좋지 못했다고 한다.

을사사화 때 정적이었던 류인숙은 한 때 정순붕과 함께 조광조 일파였고 나이도 한 살 차이에 불과했으며 젊은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였다. 말하자면 친구였을 법한데 정순붕은 친구마저 죽인 것이다.

그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정적 류관의 여종 갑이와 관련된 야사가 전해져 내려온다.

정조 때 문신인 정민시가 정순붕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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