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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이량(李樑)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4|조회수11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시대의 인물.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공거(公擧)

2. 행적

명종의 왕비인 인순왕후의 외삼촌으로, 윤원형의 세력을 견제하고자 했던 명종에게 대항마 외척으로 중용됐다. 외척이지만 전주 이씨라서 ? 싶을 텐데, 정확히는 인순왕후의 친삼촌이 아닌 외삼촌이라 즉 그 정도로 청송 심씨 가문과 왕실(전주 이씨) 간에 여러 차례 결혼이 이루어졌다는 방증이 된다.

그러나 이량은 명종이 원하던 것과 달리 자신의 권력 강화와 치부에만 골몰하였고 사림 세력과의 갈등으로 인해, 사림 세력에 우호적이었던 외조카인 심의겸과도 척을 지게 되었으며, 심의겸을 제거하려다가 반대로 기대항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 탄핵이라곤 하지만 사실 짜고 쳤던 것이었다. 이량은 심의겸과 사림을 한 번에 제거할 계획을 꾸몄는데 이게 심강의 귀에 들어갔다. 그런데 심강은 바로 인순왕후 심씨와 심의겸의 아버지였던지라 심강은 자기 딸이자 왕비인 인순왕후에게 이량의 음모를 알렸으며 인순왕후는 다시 명종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고 안 그래도 이량의 권세에 불만이 많았던 명종은 심의겸을 불러다가 기대항에게 이량을 탄핵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1582년(선조 15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사망했다. 참고로 후대 대한민국 제1공화국의 부통령 이기붕은 이량의 남계(부계) 12대손인데, 조상이나 후손이나 한때 권세는 쥐었으되 그걸 오남용하여 리타이어 당하여 결국 인생을 배드 엔딩으로 끝맺게 된 행적이 유사하며, 63세에 사망한 것도 같다. 또한 잡채상서, 잡채판서로 유명했던 이충도 그의 손자인데, 이충 역시 광해군에게 잡채를 바쳐서 호조판서, 우찬성 등으로 출세를 거듭했고 폐모론 등에도 동조하면서 간신으로 있었으며 죽은 뒤에 우의정에 추증되었으나 죽은 뒤 인조반정으로 관작이 삭탈되었는데 역시 조부와 행적이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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