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조선의인물

유홍(兪泓)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4|조회수14 목록 댓글 0

1. 개요

조선 중기의 문관 관료. 기계 유씨의 중시조 중 한 명이다. 시관으로 이이를 뽑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 이이가 한때 불교에 빠져있었다는 이유로 장원은 주지 말자고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유홍이 '선현들도 처음 공부할 때는 실수한 적이 있다. 이제 제대로 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뭘 탓하냐?'라고 두둔해서 장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함경 병사, 개성 유수, 충청·전라·경상·함경·평안도의 관찰사, 한성 판윤을 두루 역임한 실무형 관료였다.

2. 생애

오랫동안 조선의 골머리를 앓게 한 종계변무에서 공을 세워 윤근수, 황정욱과 함께 광국 공신 1등에 봉해졌다.

기축옥사 때는 정철과 함께 옥사를 지휘했는데, 잔혹한 정철에 비해 죄 없는 사람은 살려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축 옥사 자체가 선조의 비호를 받는 정철의 원맨쇼에 가까워서 크게 영향은 없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를 호종했으며 우의정에 오른다. 파천을 할 때 자기 가족들을 먼저 대피시키고 임금과 신하들은 서울을 사수하자고 해서 욕을 먹기도 했다. 본인은 이미 일흔에 가까운 노인이니 죽어도 미련이 없겠지만 아직 천수를 누리지 못한 사람들한테야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그러다 도원수 김명원의 장계를 그대로 읽고 본의 아니게 신각의 처형을 주도한다.

광해군이 분조를 이끌고 함경도로 향하자 세자를 수행하길 청한다. 함경도가 이미 왜놈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버렸다는 걸 파악한 광해군이 분조를 이끌고 남하하자 유홍도 뒤따르며 의병을 격려하는 격문을 돌린다.

왜군이 명나라와의 강화 회담으로 잠시 물러났을 땐 임금보다 먼저 서울에 와서 불탄 도성을 수습하고 전재민을 수습했다. 이후 좌의정으로 승진했으나 해주에서 왕비를 호종하다 객사한다.

참고로 그 의심 많은 선조가 일관적으로 신임한 드문 케이스의 신하였다. 전쟁 도중 대간들에게 지기는 있지만 일은 못 한다는 평가를 받아 끊임없이 탄핵받았고 본인도 고령이고 재주가 없다는 이유로 사직을 여러 번 청했지만 선조는 대신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며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실록을 보면 능력 없는 자가 재상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다고 사관에게 까이고 위급한 때에 재상을 바꾸지 않았다고 선조도 까인다. 인재를 보는 눈 하나만큼은 세종만큼이나 뛰어나다는 선조가 계속 중책을 맡겼던 만큼 능력이 없는 것 아니었겠지만, 이미 평균 수명을 훌쩍 넘긴 노령이었으므로 전시의 거친 업무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모양.

나름 조선사의 여러 굵직한 사건에 얽혀 있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심하게 낮다. 종계 변무는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기보단 뒷마무리를 처리한 거였고(게다가 홍순언의 야사 때문에 당시 실무자들은 전부 묻혔다), 기축옥사야 뭐 정철을 빼면 다들 하나같이 존재감 없기는 매한가지지만, 임진왜란 초기에 유성룡, 윤두수와 함께 전시 삼정승으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어떤 드라마에서도 유홍의 배역은 없었다. 심지어 광해군을 따른 신하들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던 신료임에도 광해군이 주인공인 매체에서까지 나온 적이 없다.

3. 여담

본인은 존재감도 인지도도 하나같이 제로지만, 사위와 외손자는 조선사에 엄청난 임팩트를 남긴 인물들이었다. 부인이 둘 있었는데,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 모두 딸을 하나씩 낳았다(딸만 낳았다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다). 이때 첫째 부인의 딸이 시집간 곳이 김장생의 아들이자 아버지와 함께 송시열을 가르친 김집이고, 둘째 부인의 딸은 김탁에게 시집가 김자점을 낳았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