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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인물

이천우(李天祐)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2|조회수13 목록 댓글 0

1. 개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무신, 군인. 이자춘의 손자이며 태조 이성계의 백형 이원계의 차남이다. 즉 태조 이성계의 조카이다. 본관은 당연히 전주 이씨. 어머니는 경주 김씨이며, 계모인 남평 문씨는 목화로 잘 알려진 문익점의 딸이다. 즉 이천우는 문익점의 의붓외손자인 셈이다.

2. 생애

2.1. 태조의 총애를 받는 조카

조선왕조실록 졸기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였고 풍모가 아름다웠으며 재기와 도량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1369년 동녕부의 수령으로 있다가 숙부인 이성계의 휘하에 바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이후 이성계를 도와 각종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 이후에는 이성계의 최측근으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에서는 그의 행적이 사실상 이성계 휘하로 들어간 이후에는 보이질 않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성계 즉위시에 이성계가 그의 부축을 받는다는 기록으로 사실상 첫 개인 행적을 보여준다.

이후 1393년에 개국원종공신에 책봉되었고, 1394년에는 상의중추원사로 임명된다. 그리고 1396년에 강원도 조전 절제사가 되어 강원도 일대에 출몰하던 왜구를 격퇴하게 한다. 그리고 1398년에는 중추원부사에 이른다. 이때까지는 확실하게 태조 이성계의 총애를 받는 조카였다.

2.2. 태종의 최측근

하지만 1398년 무인정사에 사촌 이방원의 편을 들게 되면서 숙부인 태조와는 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사실 이천우는 이방원의 봉기 사실을 알지 못했으나 중간에 사태를 파악하고 곧바로 이방원 편을 들게 되었고 무인정사가 성공이 된 이후 동지중추원사 겸 병조 전서 의흥 시위사 상장군 지삼군부사라는 상당한 직책을 받음과 동시에 자신의 형인 이양우와 함께 정사공신 2등을 책록받게 된다.

이후 정종이 즉위하게 되고 제2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자 이방간을 쳐야 한다고 숙부인 이화와 함께 이방원을 설득하는데 앞장서게 되면서 좌명공신 2등을 책록받게 되고, 1400년에는 완산 후에 봉해진다. 1402년에는 안주도 도절제사가 된다.

그러다 곧바로 조사의의 난을 맞게 된다. 난 당시 박순, 송류 등과 함께 선발대로 나갔으나 초기에 강력한 조사의에게 패배했다. 이천우가 초반에 보낸 기병 백여 명은 조사의에게 잡혔으며, 다음날 전투에서 포위당했다가 아들을 포함한 10여 명의 기병과 겨우 탈출하였다. 이후 다시금 본군에 합류하여 조사의의 난을 진압하고 태조 이성계를 시위하게 된다.

그가 이렇게 우선적으로 조사의의 난 진압에 나섰던 이유는 이성계가 총애하는 조카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난 초기에 시간을 끄는 목적으로 그를 내세우고 이후 조사의의 난을 완벽하게 진압한 이후 이성계를 데려오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실제로 그가 조사의의 난에서 한번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종은 내전에서 그만을 위한 잔치를 베풀고 비단옷을 내려주게 되는데 그 이유를 공전에서 수고하였다는 것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러한 내막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이후에도 그는 태종의 측근으로 활약하며 한양 천도 등에도 참가하고, 1407년에는 세자를 명나라 하정사로 보내는데 부사가 되어 베이징에 다녀오게 되고, 1408년에 의정부 찬성사가 되어 중앙 정계에 다시금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1409년 병조판서가 되었다가 곧바로 판의흥부사 겸하면서 다시금 의정부 찬성사가 되었고, 1410년에는 판의용순금사사를 의정부 찬성사와 함께 겸하게 된다.

그리고 1413년 이조판서가 되었고 곧바로 서북면 도체찰사가 되어 성과 병사 등을 챙기게 하였다. 그리고 1414년 완산부원군이 된다. 또한 곧바로 의금부 도제조가 되는데 이 직책을 꽤나 오랫동안 유지하게 된다. 특히 1416년에 있었던 민무휼, 민무회 형제의 숙청작업 등을 돕는다. 그러다 1417년 병에 걸려서 죽게 된다. 그야말로 마지막까지 태종의 최측근으로 활동한 셈으로, 실제로 태종은 그가 죽자 한동안 고기를 먹지 않을 정도로 슬퍼했다.

그리고 태종이 죽자 하륜, 조영무 등과 함께 태종의 배향공신이 된다.

자녀로는 이굉과 이완이 있는데 유일한 적자였던 이굉은 여러 문제를 일으키다가 아버지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불효의 죄를 받게 되면서 직첩이 거두어지고 곧 죽게 되었으며, 그의 아들들이 어머니와 함께 담양으로 낙향하여 그 지역에 종파를 이루고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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