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군주가 법과 술을 장악하지 못해 일어나는 문제들
질문하는 사람이 [다시] 말하였다.
“술은 있는데 법이 없거나, 법만 있고 술이 없어서는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한비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신불해는 한韓나라 소후昭侯를 보좌하는 사람이었다. 한나라는 진晉나라에서 떨어져 나온 나라였다. 진나라의 옛 법이 아직 폐지되지 않았는데 한나라의 새로운 법이 또 나오고, 이전 군주의 명령이 아직 거두어지지 않았는데 다음 군주의 명령이 또 새롭게 내려지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신불해는 그 법을 장악하지 못했고, 그 공포된 법령을 통합하지 못하여 간악한 자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득이 옛날의 법과 이전의 법령에 있으면 그것을 따랐고, 이득이 새로운 법과 나중의 명령에 있으면 그것을 따랐던 것이다. [이득은] 옛것과 새것이 서로 반대가 되고 먼저 것과 나중 것이 서로 어그러져서 신불해가 비록 열 번이나 소후로 하여금 술을 쓰도록 했지만 간악한 신하들은 오히려 그 말을 속이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 대의 수레를 낼 수 있는 강한 한나라에 몸을 의탁한 지 17년이나 되었으나, [소후가] 패왕 노릇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비록 군주에게 술을 쓰게 했지만 법이 관리들에 의해 힘써 지켜지게 하지 못한 우환 때문이다.
공손앙이 진秦나라를 다스릴 때 연좌제를 두어 그 사실을 따지고 열 집이나 다섯 집을 하나로 묶어 그 죄를 함께 묻고 상을 두텁게 하되 믿음을 주었고, 형벌을 무겁게 하되 확실하게 시행하였다. 이 때문에 그 백성들은 역량을 발휘하여 수고로우면서도 쉬지 않았고 적을 추격함에 있어 위태로웠으나 물러서지 않았으므로 그 나라는 부유하고 군대는 강성해졌다. 그러면서도 술로써 간신을 알아내지는 못했기에 그 부유함과 강성함 또한 신하에게 도움을 줄 뿐이었다. 효공孝公과 상군(商君, 상앙)이 죽고 혜왕惠枉이 즉위하여 진나라 법이 아직 폐지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의張儀가 진나라를 가지고 한나라와 위나라로부터 [이득을] 구하였으며, 혜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감무甘茂가 진나라를 가지고 주나라로부터 [이득을] 구하였다. 무왕이 죽고 소양왕昭襄王이 즉위하자 양후穰侯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넘어 동쪽으로 제나라를 공격하니 5년 동안 진나라는 한 자의 땅덩어리도 불리지 못하였고 [양호는] 그 도읍의 봉토를 얻어 [자신의] 성을 쌓았던 것이다. 그리고 응후應侯는 한나라를 8년 동안 공격하여 여남汝南이라는 봉토에 성을 쌓았다. 이 뒤로부터는 여러 사람이 진나라에 등용되었으니 모두들 응후나 양후 같은 부류였다. 그래서 싸워 이기면 대신들은 존중되고 영토가 더해지면 사사로운 봉토만 늘어나게 되었으니, 이는 군주가 술로써 간신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군이 비록 열 번이나 그 법을 바로 잡았더라도 도리어 신하들은 자기 밑천으로 써먹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강한 진나라의 밑천을 가지고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제왕에 이르지 못한 것은 법을 비록 관리에게 힘써 지켜지게 했더라도, 군주가 위에 있으면서 술을 부리지 못한 우환 때문이다.”
*한비자(韓非子, 기원전 280~?, 성은 한韓, 이름은 비非인데, 한비라는 이름을 높여 한비자라 부른다)는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법가사상가로 그가 지은 책이 ‘한비자’인데, ‘한비자’는 군주론과 제왕학의 고전으로 유명하며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으면서 어리석기로 알려진 후주의 유선에게 읽도록 한 책이 ‘한비자’였다고 합니다.
*한비자는 유학자인 순자의 문하에서 이사와 함께 학문을 배웠으나, 이사는 자신의 능력이 한비자만 못하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한비자’가 세상에 나온 뒤 진나라 시황제가 우연히 이 책을 읽고 감동하여 한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하여 한비자가 진시황을 만나게 되었는데, 객경 벼슬에 오른 이사는 동문수학한 친구 한비자가 진시황의 총애를 받는 것을 꺼려 그를 모함하여 진시황은 이사의 말을 듣고 한비자를 죽인 후 많이 후회하였다고 전해지고, 한비자는 본래 신하가 군주에게 유세하기 어렵다는 점을 터득하고 난언難言, 세난說難 등 여러 편에서 진언의 방법을 자세하게 말했지만 정작 자신은 죽임을 당하는 화를 피하지 못하였습니다.
*위 내용은 문학박사이신 김원중 교수님이 옮기신 ‘한비자’ 권17 제43편 정법(定法 : 법도를 확정하다) 중 ‘군주가 법과 술을 장악하지 못해 일어나는 문제들’를 옮겨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