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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한 삶2-4. 나는 편의점에 간다

작성자한병곤(네이버 블로그)|작성시간22.08.17|조회수94 목록 댓글 0

적정한 삶2-4. 나는 편의점에 간다

시작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줄의 글이었다. 내용도 간단했다.

 

자주 가는 카페에서 아는 척해서 이제 안 가...ㅋㅋㅠㅠ

 

설명도 변명도 없는 이 한 줄. 글쓴이는 엄청난 호응을 기대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어미에 달린 ㅋㅋ와 ㅠㅠ를 보니 이 ‘웃픈’ 상황을 그냥 털어놓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 정도면 사회 부적응자 아니냐’, ‘성격 참 까칠하다’ 등 약간의 조롱과 비난을 웃어넘길 생각으로 쓴 글이었으리라. 그런데 순식간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내용들은 하나같이 눈물 바다였다. 이유는 격한 공감 때문이었다.

‘마치 내 얘기 같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군.’ ‘자주 가던 가게에서 아는 척해서 이제 먼 동네로 돌아간다.’ ‘자주 오시는 손님 단골이라고 챙겨 드렸더니 쪽팔려 하시며 이젠 안 오신다.’ 누가 아는 척하면 어색하고 불편하다.’ ‘알바생이 아는 척 하는 바람에 학원 앞 가게에 1년간 안 갔다.’ 등등. 각자 자신의 생활 속에서 겪었던 애매하고 부끄럽고, 피하고 싶은 상황들이 줄을 이었다.

 

익명으로 존재할 때의 편안함으로 찾아 간 가게에서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혹은 늘 같은 걸 드시네요.”와 같은 친절한 인사를 받았을 때 꽤 많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정겨움이 아니라 불편함이었다.

그래서일까. 도시에서 자취를 하는 젊은 남녀들은 편의점에서 생필품을 소비하면서 작은 안도감을 느낀다고 한다. 물론 내가 생리대를 사든 콘돔을 사든 무관심하게 바코드만 찍어 주는 점원이 있을 때 가능하다. 몇 살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 계획인지 꼬치꼬치 캐묻는 친절한 주인장이 있다면 불편함을 넘어 소름 돋는 불쾌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도대체 이 불편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현대 도시인들은 이미 인간관계와 상호작용이 최대치를 넘어 버렸기에 과잉된 관계를 마주하면 대단한 피로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인간관계는 힘들다. 특히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말 그대로 에너지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그만큼 기력이 많이 소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아껴 주시는 시부모님

나에게 잘 대해 주는 직장 선배

내가 존경하는 은사님

별 문제 없이 잘 사는 배우자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영상통화가 꺼려지는 사이라고 한다. 시부모님, 직장 선배, 은사님. 절대 불편하고 싫은 사이가 아니다. 나를 아껴 주시고 진심으로 잘해 주시고, 나 또한 존경하고 따르는 분들이지만 매일 얼굴을 맞대고 영상통화를 하라고 한다면 어쩐지 몸서리가 쳐진다. 남편이나 아내도 마찬가지. 한집에서 나름의 규칙을 두고 일상을 유지하는 좋은 관계다. 그런데 갑자기 상대방이 매일 낮에 잠깐씩이라도 영상통화를 하자고 청한다면?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상통화 기술은 예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했다. 화질도 좋아지고 음질도 좋아졌으며 심지어 요금도 무료다. 그런데 의외로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기능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모바일 메신저에 비해 음성통화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분명한 목적이 없는 경우엔 음성통화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요즘 경향이다.

비단 영상통화뿐이겠는가. 사실 누군가에게 먼저 전화를 걸거나 연락을 주고받는 것마저도 피곤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메신저 상에서는 친하게 느껴지더라도 막상 직접 만나면 어색한 경우도 허다하지 않는가.

 

최근 인터넷상에서 관태기티슈인맥이라는 용어가 눈에 띈다. 관태기는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로 새로운 인맥을 쌓는 것에 권태감을 느낀다는 말이고, ‘티슈인맥’은 한 장 뽑아 쓰고 버리는 티슈처럼 필요에 따른 일회성 인간관계를 일컫는 말이다. 신조어는 그 시대와 사회의 위치와 고민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이 단어들이 지금 우리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초연결 시대에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택하는 사람들. 기술과 기기의 발전은 인간의 사회화를 부추기지만 그럴수록 현대인은 힘들다고 아우성을 친다. 로빈 던바의 말마따나 우리의 뇌는 이미 용량을 초과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위 글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에 심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그리고 창의성에 관해 연구하였고, 현재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면서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을 지냈고 ㄱ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대학교 각종 교육기관, 기업에서 왕성하게 강연하고 있고, ‘어쩌다 어른’, ‘세바시’, ‘책 읽어 드립니다’, ‘나의 첫 사회생활’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게 있는 김경일교수의 저서 적정한 삶 제2장 ‘비대면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들’ 중 일부를 옮겨본 것입니다. 그 외 저자의 저서로는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십 대를 위한 공부사전” 등이 있고, 역서로는 “혁신의 도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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