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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 신승희-회상(回想) -헌시 : 일제 감정기의 강제 징용-

작성자한병곤(네이버 블로그)|작성시간25.06.10|조회수32 목록 댓글 0

여현 신승희-회상(回想)

-헌시 : 일제 감정기의 강제 징용-

 

1.

우리는 누구인가?

한 세기의 강물을 바라보며

내가 선 이 자리에서

쇠사슬처럼 묶인 긴 어둠 속

한 방울의 물이 심장을 두드리고

젖은 입술에 쏟아지는 침묵의 파도는

목이 잠긴 채 날갯짓 없는 새들이여!

 

채찍과 쇠몽둥이, 잔인한 리듬은

뽑힌 손톱 사이로 흘러내리는 붉은 의지의 꽃

말하라, 굴복하라외치는 그림자들 사이로

주먹 쥔 저항은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살아 숨 쉬는 혼

발밑의 바람, 끊어진 길 위로

사라진 수많은 푸른 넋이여!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그대들의

숭고(崇高)한 발자국 그날의 역사여

한 맺힌 모국어의 아리랑이여

 

오늘의 이 나라, 피와 눈물로 지켜낸 땅 위에

벼 이삭 사이로 흐느끼는 저 숨어 우는 바람은

조상들의 숨결이 묻어있어 흙 내음 설움의 노래를 달고

역사(歷史)의 뒤안길에서 더욱 빛나는 별들이여

 

2.

아침은 와도

어둠이 사라지지 않던 그날의 시간

강물은 흐르지만, 자유는 메말랐고

흩어진 꽃잎 위로 말발굽 소리 울리던 날

누군가의 땀가 눈물로 지켜낸 논밭도

이름 모를 자들의 손에 떨어지고,

낯선 혀끝에서 우리말 모국어(母國語)가 조롱당할 때

울음 삼키며 새벽마다 숨죽여 기도하던 당신

그 암울했던 긴 세월 일제 강점기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고

분노를 분노라고 외치지 못해

가슴 도려내던 그때 그 시절

그 아픔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리오

우리는 조선 사람이다.“

이 말을, 절대 잊어선 아니 된다.

가슴 깊숙이 몰래 속삭이며

밤마다 붓 대신 손끝으로

바닥에 글자를 쓰시던 어머니!

당신의 목소리는 봇물처럼, 터져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강물로 채우시더니

당신은 지금 어느 별에서

피 묻은 전설을 노래하고 계십니까

 

3.

마지막 숨조차 낯선 딸에 뿌려진

땀과 피로 얼룩진 아들의 손,

타국의 바람에 흩어지고

그 손으로 지키려던 가족과 고향

소망은 번번이 꺾여 나무처럼 쓰러지고

깃발은 검은 물결에 휩쓸리며,

손목에 채워진 쇠사슬의 무게는

한세대를 짓누르는 고통의 산이었거늘

 

그러나 누군가는,

벽 뒤에서 태극기를 그렸고

누군가는, 붉은 손으로 시를 쓰며

길을 찾았습니다.

 

어둠은 길었은 별빛 하나 꺼지지 않고

우리의 뿌리는 땅 깊숙이 살아 쉼 쉬며

36년의 긴 겨울이 끝나고 해방의 종이 울릴 때

삼천리, 금수강산 무궁화꽃이 피어났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쓰러지지 않는 정의의 노래가

어둠을 밀어내는 봄을 부른다는 것을

 

*여현 신승희-월간 문학세계시 낭송, 평론 등단, 올해의 신춘 작가상, 위대한 한국인 대상 외 다수 수상, 진해문인협회 회장 외 다수 역임, 시의 바다/소리 문학 발행인, 월간 문학세계편집위원, 공익법인 ()한국명시낭송가협회 이사장 외 다수 활동, 시집 어머니의 강”, “바람의 언덕에서”, 시선집 교본 전문시낭송교실/이론과 실제”, “CD 시의 풀밭을 걸으며외 다수.

 

*위 시는 월간 문학세계’ 20256월호에 실려 있는 것을 올려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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