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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눈으로"

작성자아가페|작성시간15.03.03|조회수15 목록 댓글 0

                        요한복음 강해 (33) - "밝은 눈으로" (요8:52~9:12)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공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위에도, 옆에도, 아래에도, 어디를 가도 공기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풍성한 공기속에 있다 할지라도 사람이 만일 그 공기를 호흡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곧 죽어 버리고 맙니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당신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고 과거형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주님을 보았을 때 그는 주님을 향해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I am who I am-나는 스스로 지금 존재하는 자니라" 주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현재형으로 존재하고 계시는 현존자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지나온 우리 삶의 길목 마다 현재형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주님께서 영원한 현재형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분을 뵙고 좇으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자일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139:7~10) 다윗이 어찌 그토록 건강한 영적인 삶을 살수 있었습니까? 다윗은 언제나 현재형으로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뵙고 사귐을 계속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침으로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명령하셨습니다. 소경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 그는 '밝은눈'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는 주님의 명령을 쫓아 실로암으로 가기 전에는 소경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현재형으로 그와 함께 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는 주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실로암 못으로 가서 눈을 씻은 그는 밝은 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실로암 못은 어떤 곳입니까? 실로암 못의 의미가 대체 무엇이기에 이 소경이 밝은 눈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예루살렘 동문 밖 기드론 골짜기에는 기혼이란 샘이 있었습니다. 이곳으로부터 수도를 따라 흘러내리는 물이 마지막으로 고이는 곳이 바로 실로암 못이었습니다.

 

물은 절대 높은 곳으로 고이는 법이 없습니다. 흘러내리는 물은 반드시 낮은 곳에 고이게 마련입니다. 실로암 못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낮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눈을 씻는 다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무릎을 꿇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소경에게 실로암으로 가리신 것은 단순히 샘으로 가라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낮은 마음의 소유자가 되라는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지금 이순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데도 그 주님을 뵐 수 없고 느낄 수 없다면, 나 자신이야말로 영적 소경인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실로암이란 단어는 '보냄을 받았다'는 뜻임을 본문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실로암으로 가라, 가장 낮은 곳으로 가라" "낮고 낮은 마음의 소유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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