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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는 그것!"

작성자아가페|작성시간15.03.13|조회수18 목록 댓글 0

                                     요한복음 강해(35) - "지금 보는 그것"

(요한복음 9 : 13~ 9 : 25)

13 저희가 전에 소경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17 이에 소경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18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 보시오 하였더라
24 이에 저희가 소경되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말씀 나누기*

 

예수께서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의 눈에 침으로 진흙을 이겨 발라 주심으로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사랑은 보지 못하고 '어떻게' 고쳤는지만 집착하고 있습니다.(15절, 21절, 26절) 마치 예수님이 하신 방법에 신통한 방법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히스기야 왕이 죽게 되었을 때, 이사야 선지자가 무화과와 밀가루를 반죽하여 히스기야의 환부에 발라 주므로 병이 나았습니다. 여리고성의 물이 나빠 먹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엘리사 선지자가 소금을 던져 물을 생수로 회복시켰습니다.

 

그러나 밀가루 자체에, 소금 자체에 신통력이 있어서 병이 나은 것이 아닙니다. 히스기야 왕을 사랑하시고, 여리고 사람을 사랑하신 하나님의사랑이 밀가루와 소금을 도구로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밀가루와 소금이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침으로 진흙을 이겨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흙을 신비로운 신통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소경을 향한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보지 못할 때 단지 기적의 형식과 외형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최소한 1만 명 이상을먹이신 기적이 있습니다. 이 기적이 우리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처럼 엄청난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빵과 생선의 양이 아닙니다. 그곳에 있었던 인파의 수효도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황량한 벌판 위에서 먹을 것 없이 기진해 있는 우리를 주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많은 인파가 먹었던 빵과 생선은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의 결정체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주님의 사랑을 본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예가 바로 삭개오의 경우입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성의 세리요 난쟁이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자리를 이용하여 치부하는 것만을 삶의 낙으로 삼던 자였습니다. 마디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경멸당할 수밖에 없는 불의한 인간이었습니다.

 

그 삭개오의 집에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그와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이를 두고 동네 사람들은, ㅈ님께서 불의한 세리와 함께 식사를 하신다며 주님을 비판하였습니다. 그날의 음식은 결코 오병이어의 기적 때처럼 엄청난 분량이 아니었습니다. 식사 도중 주님께서 무슨 훈계의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삭개오는, 주님을 향해 자신의 결단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습니다. "주님, 제 소유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으며, 다른 사람에게 사기 친 것은 네 배를 더하여 갚겠나이다."

불의하던 삭개오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었습니까? 자신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삶으로의 적용*

① 얼마 전 뉴스에서 소금으로 관장을 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처럼 속여서 사기 시술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보길 원합니까?

② 지금 날 때부터 보는 소경이 보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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