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37) -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요 9 : 26 ~34 )
26 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ㄴ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수 없으리이다
34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에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 내어 보내리라
보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그저 보는 것을 견 (見)이라 하고, 무엇인가를 주의 깊게 살펴 보는 것을 관(觀)이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주의깊게 살피는 것을 '견찰(見察)'이라 하지 않고, '관찰(觀察)'이라 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도 보면 '보다'라는 말은 한가지 단어이지만 두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음악좀 들어봐" "맛을 봐" 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1)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2)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3) 산은 (역시)산이요, 물은 (역시) 물이로다.
이 말은 단순히 산과 물을 육체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깊은 생각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재차 소경 되었던 자를 불러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음을 분명하게 증언하였습니다. 소경된 자와 바리새인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보고서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는데, 이 사람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서 하나님을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소경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그는 소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흙을 눈에 발라 주실 때에도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습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자신의 눈을 씻고 열린 눈으로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그곳에 계시지 않았음을 요한복음 9장 12절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예수님을 아직 자기 눈으로 직접 뵙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 하였으면 아무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33절)
그는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지 못한 상황에도,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의 손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음을 보았습니다. 빌라도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면서 진리를 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였지만, 사도바울은 다메섹에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의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았지만 예수님이 어디로부터 오셨는지 보지 못하였지만, 앞을 보지 못한 소경은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 없는 상황에도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셨을 것을 보았습니다.
일평생 소경으로 산 크로스비는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나의 갈길 다 가도록'을 만들었습니다. 어찌 그가 만사형통을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날마다 뵙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2015년 사순절을 통해 우리의 눈이 주님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은혜의 시간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