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39) - "양의 목자라"
(요한복음 10:1~6)
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가리사라 빌립보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언뜻 이 질문은, 주님에 대한 제자들의 인식이 어떠한 지를 묻고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희는 너희 자신을 누구라 인식하고 있느냐? 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주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가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앎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죄인이요, 죄인인 자신의 생명은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바르게 알고 있었음을 뜻합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위대한 신앙이었던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나는 주님의 양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양은 세가지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양은 길을 찾지 못합니다. 둘째, 양은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 못합니다. 셋째, 양은 자기 생명을 스스로 보호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모신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십니다" "나를 소생시키십니다"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
강원도에서 양털을 깍던 한 성도님이 목자 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글이 있습니다.
드디어 양털깍기 작업이 시작되었다. 말로만 듣던 양을 직접 대하고 더욱이 양털까지 깍게 되니, 시편 23편을 즐겨 묵상하던 나의 기대는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러나 그 기대는 양털깍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못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양들이 느닷없이 뛰며 소동을 피우는가 하면,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트림을 하기도 했으며, 시도 때도 없이 오줌과 똥을 싸기도 했다. 특히 엉덩이 부분을 손질할 때엔 지저분함과 추한 냄새로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양털에 배어 있는 고약한 냄새와 더러운 기름기가 온통 그대로 나의 옷에 스며드는 것이었다. 얼마나 머리가 지끈 거리던지, 양털 깍는 일로는 절대로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짐까지 할 정도였다. 그토록 고통스러운 1주일 동안의 양털깍기가 끝나던 토요일 새벽, 내 마음속에는 전혀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양털깍는 일이 내게는 그토록 고통스러웠지만, 그 목장의 목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역겨운 냄새나 더러움을 조금도 문제 삼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말 태연히, 기쁘게 일하고들 있었다.
양을 스스럼없이 쓰다듬어 주거나 좋은말로 타이르기도 하며, 내가 그토록 역겨워했던 부위를 다정하게 손질까지 해주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차이일까? 목자들은 양들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는 더럽고 역겨웠던 것들이 그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생각과 함께 내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기쁨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양들과 다를바가 없어. 아니 바로 내가 양이야. 더럽고 역겨운 냄새나 풍기면서 얼마나 목자를 성가시게 했던가? 그렇지만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의 모든 더러움을 문제삼지 않고 돌보아 주시고 지켜 주시는 거야"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 앞에 감사의 무릎을 끓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