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13-17 부드러움과 조화로움.
병을 고치시고 떡을 먹이시고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보면 예수님을 못마땅해하던 사람들도 있을까? 싶은데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못마땅해하던 사람들은 당시 이스라엘은 식민 통치하고 있던 로마사람들이나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나 부자들처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못마땅해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했던 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주님을 비난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16절에 어찌하여 예수님은 경건한 사람이라면서, 메시아라면서, 하나님을 전한다고 하면서 누구나 싫어하는 로마의 앞잡이 같은 세리들과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는 죄인들하고 먹을 수가 있는가? 라며 비난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서도 영적 깊이와 시야가 넓어지지는 못하고 도리어 자신의 잣대로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려고 주님마저 비난하는 것입니다.
본문 2:1부터 보면 네 사람이 메고 와서 지붕을 띁어내고 내린 중풍병자를 주님이 고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손뼉 칠만한 일입니다. 그런 일이 여러분의 인생에 우리 교회에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서기관들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못마땅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신 후 죄 사함도 받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죄가 우리의 영혼을 마비시키고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서기관들은 병자만 고쳐주지 죄사함까지 말하냐며 참람하다고 말합니다. 신성모독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식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따라다니며 시비를 걸어옵니다. 우리도 그런 신앙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을 공격하여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런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세상은 어떻게 우리를 보고 있을까요?
화 있을 찐저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영성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의 사건과 주님을 통해서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먼저 믿는 사람들의 영성을 3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단계의 영성은 사람들과 섞여 지내며 신앙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세리와 죄인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다 이스라엘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환경과 상황에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오염되고 세속화 되는 영성이 낮은 단계의 영성입니다.
그리고 중간단계의 영성이 있습니다. 오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보여주는 영성의 수준입니다. 나름대로 신앙의 기본을 잘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자랑이 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게 됩니다. 자기만을 고집합니다. 이런 사람이 제일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의가 가득한 사람은 많은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고 불편하게 합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깊은 영성은 자신을 지키면서도 포용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바닷가에서 깊은 신앙에 대해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주님의 가르치심은 이론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적인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이 본문의 사건입니다.
주님은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있는 레위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참된 믿음의 사람의 모습을 알게 하십니다. 그것은 자신을 지키면서도 포용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인 우리가 날마다 채워가야 할
예수님이 보여주시신 그 깊은 영성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부드러움에 있습니다.
17절에 그렇게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들 아픈사람들이 아니냐? 이 사람들도 이 험한 죄의 구덩이에서 빠져 나와야할 사람들아니냐? 그러시면서 병든사람들에게 의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 탕자의 이야기에서 큰아들에게 동생 좀 불쌍하게 여기라는 아버지의 온유함이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영성의 특징입니다.
나물도 부드러운 것이 맛이 좋은 것처럼 영적 건강함도 부드러움과 함께 갑니다.
강성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너무 공격적이고 말과 행동이 과격한 것이 영성이라고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채찍을 휘두르는 것은 애굽의 바로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칼로 흥하면 칼로 망한다고 하시고 귀를 고쳐주셨습니다.
[겔36:26]은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믿는 사람인 우리가 날마다 채워가야 할
예수님이 보여주시신 그 깊은 영성의 특징은 조화로움에 있습니다.
자기 특성을 지키면서도 포용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품고 계십니다.
주님의 생명을 가진 우리는 자신 중심은 지키면서도 넓은 포용력을 영성의 고양해야 합니다.
그것이 조화를 이루게 합니다. 내편 네편으로 나누는 벗어나서 이해하고 품어보려고 하는 것이 깊은 영성의 사람입니다. 그것은 공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해하고 함께하고 건져내는 것입니다.
바닷물을 생각해 보라 소금은 없다 그런데 짜다 자신의 짠 맛을 지키면서도 바다를 품습니다.
그것이 포용력입니다.
믿는 사람인 우리가 날마다 채워가야 할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깊은 영성은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모습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영성은 삶입니다.
부드러움과 조화로움이 있는 포용력 있는 깊은 영성으로 모두를 살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