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강
8. 살몬은 라합에게서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마1:5)”
Ⅰ. 살몬은 라합에게서
마태복음 1장에 있는 이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이다. 여러 면으로 여러 가지 족보들이 있지만 이 족보는 그리스도를 낳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에 관계된 족보라고 할 수 있고 그리스도를 낳지 못한 사람들은 이 족보에서 제외되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낳기 위해서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낳지 못한 모든 것은 우리의 족보에서 제외되어야 하고 우리의 세계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으며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으며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를 누리게 되었는가 하는 것만 우리 역사에 남게 된다.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1. 살몬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마1:1-5)”
여기서 베레스 이후에 몇 대가 흘렀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살몬을 낳기 위해 있었던 사람들이다. 살몬은 여리고의 기생인 라합과 결혼을 해서 다윗의 조상인 보아스를 낳게 된다.
2. 라합
여리고는 하나님에 의해서 영원토록 저주 받은 곳이다.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수6:26).”라고 여호수아가 저주한 땅이다.
여기서 기생을 하고 있던 사람이 바로 라합이라는 여자다. 이 여자가 예수의 족보에 들어 있는 조상이 된 것이다. 라합은 이방인으로 버림 받은 땅에서 하나님과 그 백성의 중심부로 들어온 여자다. 아무리 바깥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예수의 족보에 깊숙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완전하게 버림 받은 땅에서도 중심부까지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것을 본다.
가. 이스라엘 정탐꾼을 도움
이 여자는 왜 살몬과 결혼하게 되었던가?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파괴시키기 위해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살몬이었다(수2:1). 살몬이 기생 라합의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성에서 알고 라합의 집에 찾아가서 정탐꾼을 내놓으라고 한다.
라합이 살몬과 그 일행을 숨겨놓고 여기 오기는 왔지만 해질 무렵에 벌써 떠났으니까 지금 바로 뒤를 쫓아가면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속였다. 그들이 간 다음에 라합은 두 사람을 내놓고 “내가 당신들의 생명을 구해주었으니까 당신들이 이 땅에 들어올 때 내 생명을 구해 달라.”고 해서 서로 언약을 맺게 되었다.
나. 정탐꾼을 도운 이유
왜 라합은 이렇게 했는가? 라합이 그들에게 말하기를“우리가 당신들이 하는 일을 보고 온 간담이 다 서늘해졌다. 우리는 홍해가 마르는 것을 보고 당신들의 하나님이 놀라운 분인 것을 알게 됐고, 시혼과 옥이라고 하는 두 성을 쳐부술 때 완전하게 멸망시키는 것을 보고 우리가 완전하게 손을 들었다. 당신들이 이 땅에 들어오면 승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에게 내 생명을 맡긴다(수2:9-13).”고 했다. 이 여자는 하나님 백성의 영광스러운 승리, 놀라운 승리를 보고 하나님 백성에게로 돌아온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함을 얻을 수 있으나 성령을 거역하면 사함을 얻지 못한다(마12:32,눅12:10).”고 하셨다. 이것은 같은 사람이니까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역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를 보고도 어떤 이유로든지 그것을 거부하게 된다면 여리고성과 같이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생 라합은 하나님과 그 백성이 놀랍다는 것을 알고 항복한 것과 같다.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를 보고 믿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멸망이 된다. 라합이 정탐꾼들을 보내줄 때 “나와 내 가족을 구원해 달라.” 하고 언약을 맺은 후 지붕에서 줄을 내려서 보내주었다.
정탐꾼들이 라합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집안에 있는 사람은 우리가 구원할 의무가 있지만 만일 거기서 뛰쳐나간 사람은 우리가 구원할 의무가 없다.” 하였다. 라합이 “당신들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달아 놓았다(수2장).
다.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음
여호수아가 그 성을 무너뜨리려고 진격을 했을 때 바로 이 약속을 지켜서 기생 라합과 그 가족과 친척까지 그 집 안에 들어온 모든 사람을 건져내게 되었다. 살몬과 라합을 보면 살몬은 생명을 주는 자이고, 라합은 생명을 받는 자이다. 그래서 살몬과 라합이 결혼을 해서 보아스라고 하는 경건한 사람을 낳게 된 것이다. 기생의 자리에서 보아스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보아스는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사람이 되었다. 생명을 주는 자와 받는 자가 합하면 보아스가 나온다. 하나님과 사람이 합하면 그리스도가 나온다는 것이다.
라. 기생의 신분에 어울리는 행동을 함
이 여자는 기생의 신분에 가장 어울리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이 된다. 그 땅에서 버림 받은 사람 가운데서 가장 버림 받은 사람이 창녀가 아니겠는가. 이 창녀에게는 국적도 국가도 민족도 아무것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1) 살기만 하면 되는 사람
이런 여자는 평시에는 참으로 비참한 여자이지만 전시가 돌아오면 살 수 있는 것이다. 왜 죽는가? 국적과 국가와 민족 때문에 죽는 것이다. 그러니 이 사람은 국적도 국가도 민족적인 자존심도 없으니까 아무데라도 붙어서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전시에는 이런 사람이 유리하다. 살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살려주고 보호해 줄 자만 있다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그런 사람이다. 창녀의 신분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적절히 필요한 신분이라 할 수 있다.
2) 여리고에서 구원 받음
하나님께 버림 받은 곳에서 버림 받은 사람이 바로 라합인데 이 여자는 참 복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버림 받은 곳에서 인정받은 사람은 멸망의 날에는 두렵고 떨리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버림 받은 곳에서 버림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리고는 하나님께 버림 받은 곳이다. 거기에서 이 여자는 버림 받은 여자다. 하나님의 구원이 아주 가까운 사람이다. 라합은 전멸의 땅에서 완전하게 구원을 받았다. 완전하게 세상에서 버림 받은 사람은 완전하게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을 받는다. 세상이 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슬프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버림 받는 것이 슬픈 것이다.
여리고성이 멸망할 때 보면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이 비참한 것이다. 기생의 신분에서 국적이니 국가니 민족이니 하고 있었다면 자기 격(格)에 어울리지 않는다. 자기 혼자 나는 애국자다 해봤자 소용없다. 자기를 버린 땅에다 충성을 해봤자 뭘 하겠는가. 기생은 기생답게 있는 것이 옳다. 이 여자는 기생다운 행동을 한 사람이다.
3) 불의한 재물로 영원한 친구를 사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셨다. 이것이 참 특이한 말이다. 이것은 지혜로운 불의한 사람에 대한 말이다. 어떤 사람이 주인이 자기를 해고할 것을 알았다. 그는 주인 몰래 빚쟁이들을 모두 불러다가 장부를 조작해서 탕감을 해주었다. 그런 지 얼마 후에 그가 해고를 당했다. 그랬더니 탕감 받은 사람들이 “그 사람 덕을 많이 봤으니까 그를 도와주자.”해서 도와주었다. 그러니까“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네가 망할 때 그가 너를 돕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말로 불의한 재물로 또 불의한 일을 하는 것이니까 옳지 않은 일이다. 그러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라는 말이다. 너희는 망할 세상의 것을 가지고 영생할 것을 사라는 것이다. 세상은 어차피 없어지고 망할 것인데 그것을 붙들고 있다가 영원한 보화를 놓치지 말고 그것을 퍼주어서라도 영원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다.
살몬과 라합이 합해서 보아스가 나왔다. 우리는 기생 라합으로 꼭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 나라와 민족을 떠나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 불의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 등이 있는데, 거기에서 보아스를 낳는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로 합해진다.
왜 예수에게서 그리스도가 나왔겠는가. 바로 이런 똑같은 원리에서 나왔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라합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족보가 이렇게 형성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니까 산 혼이 되었다 함과 같다. 흙과 생기는 서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존재다. 하나님은 당신의 세계를 이렇듯 절대로 없으면 안 되는 것끼리 만들어 놓았다. 라합과 살몬은 절대로 서로 없으면 안 되는 존재다. 이처럼 하나님과 사람은 절대로 서로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마. 장자권은 실제적인 사람을 통해서 옴
장자권은 실제적인 사람을 통해서 왔다. 허황된 사람,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실재이므로 실제적인 세계에서만 그리스도가 있다. 오늘날 종교는 얼마나 허황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전혀 얼토당토 않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을 믿고 있다. 그것을 믿으면 믿을수록 더욱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가 나올 수 없다. 그리스도는 지극히 실제적이다. 땅은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땅이라는 것은 실재 중에서도 실제적인 것이다. 영원히 변치 않고 있는 것이니까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그대로 있다. 땅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땅으로 묘사되고 있다.
1)천국을 침노한 사람들
하나님 나라는 생명과 은혜가 필요한 실제적인 사람에게 온다. 수로보니게 여자가 예수께 도전했던 것을 본다. 예수께서“나는 이방인에게 보냄을 받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강력하게 거절하셨다. 이 여자는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개도 그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15:27).” 하며 그 은혜에 대해서 도전했던 것이다. 이 여자가 결국 천국을 침노하게 되었다.
사마리아 여자는 이방 여자이고 버림 받은 여자나 마찬가지였지만 이 여자도 예수께 도전해서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 막달라 마리아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천국은 침노를 당하는 것이다. 천국은 그러하므로 기생 라합에게, 다말에게 침노를 당한 셈이다.
다말은 내가 어떻게 하면 장자권을 빼앗기지 않을까 해서 천국을 침노한 것이다. 비록 옳지 않은 방법이었다 할지라도 이 방법을 통해서 천국을 침노했다. 그 당시에 장자권은 육신에 관계된 것이었기 때문에 방법도 역시 부당한 방법이 개입되었다. 육신의 장자권은 육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쟁취함에 있어서는 부당한 방법이 동원될 수 없다. 그리스도 자신이 완전하기 때문이다. 기생 라합은 천국을 침노한 사람이다. 자기 땅과 자기 민족과 자기 국가를 팔아서 영원한 나라를 사게 되었다. 세상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기생 라합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자기는 그 나라에서 버림 받은 사람이고 그 나라에 있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니까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보고 오히려 이스라엘 정탐병에게 자기 생명을 부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생명과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
생명과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배부르지 못할 것을 보고 은(銀)을 달아주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생명을 모르고 사치스러운 것만 봤다는 것이다. 흉년이 되면 물건 값이 싸다.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먹을 것으로 교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부자가 더욱 부자가 되었다. 싼값으로 좋은 것을 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자기 먹을 것은 생각지 않고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 자기 양식을 팔아먹었다. 이것은 자기 생명을 팔아먹은 것이니까 어리석은 사람이다. 어느 날 가면 후회할 날이 돌아온다. 금붙이가 없어 죽는 것이 아니라 양식이 없어 죽는다. 그래서 생명과 은혜, 구원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3) 세상의 어리석은 자를 들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함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어리석은 자를 들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려 하신다(고전1:27).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 어리석은 자들은 생명과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세상에서 여유 있는 사람들이므로 은혜 받을 필요가 없고 세상적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실제적인 세계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고 말았다. 생명과 은혜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우리 인생이 존재하기 위해서 가장 밑바탕에 은혜가 필요하다. 그 은혜 위에 생명이다. 가장 밑바닥에 필요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우리가 억지로 지혜로워지고 싶다고 해서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잘 살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잘 살아지는 것도 아니다. 참으로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회사에 들어가면 ‘나는 이 회사가 아니면 굶어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회사를 뒤엎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남이 볼 때는 똑똑한 사람 같아도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다. 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지혜롭다.
4)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자의 것임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나는 이것 아니면 못산다.” 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갖는다. 장차 망할 것을 가지고 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부유한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자기가 천년만년 살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가진 것이 많을지라도 ‘오늘이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아는 사람, 자기가 진짜 아무것도 없는 줄로 아는 사람, 오늘 밤에라도 내 영혼을 부르시면 갈 수밖에 없는 사람, 자신이 지극히 가난한 줄 아는 사람, 은혜와 생명이 절실히 필요한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우리는 늘 생명을 가지고 있으니까 생명의 귀함을 모른다. 5분간 호흡을 정지하면 다 죽을 것이다. 그럼에도 호흡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모른다.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평범한 것이 귀중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5) 하나님 나라가 가장 소중함
이 여자는 참으로 그런 조건에 합당하게 행동했다. 자기는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그런 것이 없다.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도 어차피 기생이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 있는 것뿐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자기가 위대한 사람이 될 수도 없고 자기가 무슨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니까 어디 가서든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거기서 지혜가 나온다. 세상의 어리석은 자를 들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한다는 것이다. 지혜는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실재를 아는 것이 지혜이다. 내가 누구인가 아는 것이 지혜이다.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알면 아주 지혜로운 것이다.
이 여자는 자기 분수에 지극히 합당하게 살고 있었으므로 지혜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 성 안에 많은 사람이 있었겠지만 아무나 이렇게 했겠는가. 어떤 집에 갔다면 정탐꾼이 왔다고 밀고했을 것이다.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 나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여자에게는 자기 나라가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이 사람들을 살려주게 되었다. 이 여자는 이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이 마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돌아온다. 교회로, 하나님 나라로 오는 자는 이 마음을 가진 자가 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하게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해줄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안 오는 것을 본다. 천국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하면 천국을 갖지 못한다. 무엇보다 천국이 소중해야 그 사람에게 천국이 있다.
하나님에게로 온 자, 그리스도에게로 온 자를 보면 무엇보다도 이것이 소중하기 때문에 온다.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에게 천국은 침노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중해서 오니까 천국은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돌아와서 그 안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른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이었다. 그 백성은 한 목자 안에 있음으로써 보호 받게 된다. 다른 이방인들은 모두 머리가 없는 백성들이다. 반면에 이들은 머리가 있는 백성이므로 그리로 돌아온다는 것이 축복이다.
3. 구원과 지혜
오늘날 우리는 교회가 이 땅 위에서 마지막 구원의 장소라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과 그 백성을 대표하고 있지 않다면 누가 그쪽으로 들어오겠느냐는 것이다. 만약 교회가 하나님과 그 백성을 대표하는 교회라면 그리 들어오지 않는 것은 모두 멸망이다. 그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가. 구원
구원은 무엇이며 지혜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부르고 있고 당신의 나라 안으로 부르고 있다. 아무 곳에서나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나라 안에서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구원이라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한다. 어느 나라 안에 있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어도 애굽에 있는 것은 구원이 아니다. 반드시 애굽에서 나와야 된다. 구원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있는 것이 구원이다. 애굽에서 바로의 밑에 있다가 바로를 떠난 것이 구원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태이고 어떤 결과이다. “나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믿음의 결과가 구원이 될 수는 있지만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믿음이 없으면 구원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 사람은 애굽 땅에 있으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구원이 아니다. 그 사람이 믿음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애굽을 나와야지 그것이 구원이다. 믿음은 언제 필요한 것인가? 애굽을 나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나. 지혜
지혜는 하나님과 그 백성 안에 함께 사는 것이다. 누가 하나님과 그 백성 안에 함께 살기에 적합한 사람이겠는가? 여리고성의 라합 같은 사람이다. 천국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침노를 당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나라이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왔을 때 그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고 예수님 자신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4. 마무리
이 여자는 세상에서 지극히 불행한 여자였다. 하지만 예수의 나라에서 예수를 낳게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요소가 되었다. 이런 요소들이 모두 흘러 내려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낳기까지 이른다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모두 기생 라합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에 있다. 우리가 좀더 깨끗했더라면, 우리의 나라가 좀더 사랑스러웠다면, 우리가 좀더 의로웠더라면 좋았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천국에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그렇지 못하던 모든 것들이 지금은 하나님 나라를 침노하는 힘과 권세와 능력과 지혜가 되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된다(고전1:18).”는 것이다. 잠언을 아무리 읽고 지혜로운 행동을 하려고 해도 우리 자신이 실제적인 자리에 있지 아니하면, 십자가 안에서 발견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창조와 은총 안에 발견되지 않으면, 지혜를 아무리 가지려고 해도 지혜를 가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