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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의 자랑입니다 _ 고전1:18~31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3.10.20|조회수183 목록 댓글 0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렘9:23)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하십니다. 세금을 내지 않고 에버랜드를 상속받는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하십니다. 국정원을 이용해서 권력을 재창출하는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하십니다.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하십니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 전쟁을 불사 하겠다 협박하는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하십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평생 농사짓던 땅을 빼앗아 송전탑 세우는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하십니다.

 

부를 자랑하지 말라 하십니다. 서울 강남의 고급 빌라에 거주하는 것을 자랑하지 말라 하십니다.에쿠우스를 탈 지 비엠더블유를 탈 지 고민해야 하는 부를 자랑하지 말라 하십니다.

 

지혜도, 용맹도, 부도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사람이 자랑할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 외엔 없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렘9:24)

 

하나님께서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시는 것,을 자랑한다는 것은 땅으로 오신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땅으로 오셔서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시는 방식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저항’과 ‘실패’의 상징입니다. 악한 권력에 저항한 자를 처벌하는 형틀이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저항하다 실패하여 죽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악에 저항하셨고, 그러나 실패하셨고, 그래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언뜻 보기에 ‘미련한 것’입니다.(고전1:18,21)

 

예수님께서 미련하셨던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할 것을 믿으셨습니다.(눅9:22) 우리의 믿음은 이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따라, 악에 저항하다가 실패하여 죽는다 해도 부활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저항하다 실패하여 죽으면, 예수님처럼 부활 한다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보다 미련한 것은 없지만, 이 미련한 것을 통해 부활한다면, 십자가를 지는 것은 참으로 지혜롭고, 참으로 용맹스럽고, 참으로 수지맞는 일입니다.

 

아무리 지혜롭고 아무리 용맹스럽고, 아무리 수지맞는 일이라도 맨 정신으로 십자가를 질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서서히 오랜 시간 동안 죽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보다 더한 공포는 없는데, 공포를 마주하며 극심한 고통을 서서히 감내하는 것은 맨 정신으로는 못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는 십자가를 집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는 자기 욕망에 ‘저항’하고 자기 성취에 ‘실패’하며 ‘날마다’ 죽습니다.(고전15:31) 우리 몸에 생기는 병도 십자가를 지듯 사랑하다가 생긴 ‘예수의 흔적’입니다.(갈6:17)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도 자식을 사랑하듯 인류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지는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전쟁을 일으킨 이북의 원수라도 굶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오랜 수고로 옹이처럼 상처 나고 낙엽같이 부스러지는 몸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더 이상 쥐어 짜낼 것 없는 할머니들의 마른 젖꼭지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자식들을 위해 마름에게 휘둘렸던 아버지들의 흔들리는 눈동자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없는 약하고 가난한 우리가, 우리의 자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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