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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_ 마9:9~26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4.02.09|조회수98 목록 댓글 0

‘나병환자’가 있습니다.(마8:1~4) ‘중풍병자’가 있습니다.(마8:5~13;9:1~8) ‘귀신들린 사람들’이 있습니다.(마8:28) ‘부인병’에 걸린 사람이 있습니다.(마9:20) ‘맹인’들이 있습니다.(마9:28) ‘말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마9:32)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마9:10)

 

존재하는 것 자체가 죄였습니다.

 

예수님 사시던 때에 나병환자, 중풍병자, 귀신들린 자, 부인병에 걸린 자, 맹인, 말 못하는 사람, 손가락질 받는 사람은 죄인 취급 받았습니다. 세상은 생산성이 없거나, 보기에 꺼림칙하거나, 냄새가 나는 사람들을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죄인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으로 그들은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단죄하지만, 하나님은 그들도 창조하셨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 하셨습니다.(창1:31)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다’는 것은 ‘선하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들은 죄인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선한 것입니다. 사람의 의는 선과 악을 구분하지만, 하나님의 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품는 것입니다.(마5:45)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있습니다.(마5:6)

 

나병환자, 중풍병자, 귀신들린 자, 부인병 앓는 자, 맹인들, 말 못하는 사람,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의에 주리고 목마란 사람들’을 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모세의 율법을 근거로 이들을 격리시켰고 접촉을 금했습니다. 생산성이 없거나 아프거나 아파서 냄새나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이 ‘거룩’이라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천국’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배부른 세상입니다. ‘이스라엘’이 담아내지 못했던 사람들을 ‘천국’이 담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품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낡은 가죽 부대’니까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을 담아내려면 ‘새 부대’여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마9:17)

 

나병환자, 중풍병자, 귀신들린 자, 부인병 앓는 자, 맹인들, 말 못하는 사람,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이 ‘새 포도주’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부대가 터져 쏟아지’지만 ‘천국’이라는 ‘새 부대’는 이들을 견딜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 중풍병자, 귀신들린 자, 부인병 앓는 자, 맹인들, 말 못하는 사람,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은 ‘천국’이라는 ‘새 부대’에서 발효되어 향긋한 포도주가 될 것입니다.

 

나는 ‘나병환자’같아 사람들이 꺼리기도 하고, 나는 ‘중풍병자’ 같아 제대로 하는 일이 없기도 하고, 내 몸 속 어딘가에 ‘지린 피’가 비린내를 풍기기도 합니다. 나는 병 걸린 ‘죄인’입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여전히 보이지 않고, 설교를 하나 어눌합니다. 나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죄인’입니다. 세상은 나를 담지 못하지만, 천국이 나를 담습니다. 나는 아직 떫고 여전히 신 ‘새 포도주’지만, ‘천국’에서 향긋한 포도주로 발효될 것입니다.

 

교회가 천국입니다. 대한민국이 품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천국인 교회가 품어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심장이 미치지 못하는 모세혈관이 있다면 ‘예수의 심장’으로 뿜어주어야 합니다. 아직 떫고 여전히 신맛 나는 사람들을 담아내는 ‘새 부대’가 교회입니다.

 

존재하는 것이 죄가 되는 사람들, 그들이, 우리가 천국이라는 새 부대에 담긴 새 포도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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