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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일까 _ 마15:29~39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4.03.08|조회수138 목록 댓글 2

은 옛날 히브리 백성들이 하나님의 현존을 느꼈던 곳입니다.(19:16) 은 모세가 십계명,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곳입니다.(20) 하나님께서 계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울리는 에서,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기적이 일어납니다.(15:31) 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15:29) 기적의 현장 에서 큰 무리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15:31)

 

큰 무리가 에서 기적을 경험하고 잔치를 누리고 있는데, 제자들은 광야라 합니다.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15:33) 제자들이 광야라 합니다. 제자들은 큰 무리와 예수님이 함께 앉아 있는 광야로 이해합니다. 큰 무리와 예수님께서 오르신 산이 고산준령(高山峻嶺)은 아니었겠지요. 호수와 닿아 있었으니(15:29) 야트막한 언덕바지mountainside였을 겁니다.

 

언덕바지가 산이냐 광야냐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언덕바지가 해발 몇 미터인지 측량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입니다. 지리학적으로 언덕바지를 산으로 불러야할지 광야로 불러야할지 전문가의 고견을 청취하는 것도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언덕바지를 산으로 아셨고, 제자들은 언덕바지를 광야로 받아들입니다. 야트막한 언덕바지가 하나님의 말씀이 울리고 치료가 일어나는 이 되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가 되기도 합니다.

 

광야를 걷고 계십니까. 광야를 걷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광야에 멈춰 서 있습니까. 광야에 멈춰 서 있는 것은 더 힘든 일입니다. 광야를 걸으면 몸이 힘들고, 광야에 멈춰 서 있으면 맘이 힘듭니다. 걷고 있든, 서 있든 광야에 있습니까. 그래서 고통스럽습니까. 광야에 있어 힘드십니까. ‘광야에 있어우리가 광야에서 힘들고 광야에서 고통스럽다면, 그건 착각입니다.

 

우리는 광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절뚝거리는 다리로 통과해야 하는 광야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절뚝거리던 다리가 사슴처럼 뛰게 되는 산에 있는 것입니다.(18:33) 우리는 광야 초입에 겨우 서서 지평선에 절망하는 맹인이 아니라, 이전에 알지 못했던 빛을 발견하고 눈 번쩍 뜨인 선각자입니다.(1:3)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울리는 산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인 것 같아도, ‘우리에게 있는 것을 찾아보면 도시락 하나쯤 있습니다.(14:17;15:34) 도시락 하나 때문에 예수님은 감사(축사)give thanks하셨습니다.(14:19;15:36) 하나님의 말씀이 울리는 에 있다면, 도시락 하나 때문에 감사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울리는 산에서는 도시락 하나로도 사천 명이 배불리 먹는 잔치가 열립니다.(15:38)

 

우리 사는 자리가 아무 것도 없는 광야일까요? 아니오, 하나님의 말씀이 울리는 산입니다. 우리 사는 자리가 넘을 수 없는 지평선에 에워싸인 광야일까요? 아니오, 지평선 너머까지 훤히 내다 보이는 산입니다. 우리 사는 자리가 병들어 내쫓긴 사람들의 유배지같은 광야일까요? 아니오, 병자들마저 고침 받는 산입니다.

 

여기 광야를 걷고 있어 몸이 힘들거든, 여기 광야에 멈춰 서 있어 맘이 힘들거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는 광야가 아니라 산이니까요. 우리 있는 여기는 광야가 아니라, 천국과 맞닿아 하나님의 육성 쩌렁한 입니다.

 

 

 

첨부파일 140309_민들레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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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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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anna | 작성시간 14.03.11 광야를 견디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말씀듣고 생각해보니
    산 위에서 누리고 있었네요.

    샘물 촉촉한 산 등성이에서 말이죠. ^^
  • 작성자용감하게 명랑해 | 작성시간 14.03.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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