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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라 _ 마19:16~26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4.03.16|조회수97 목록 댓글 0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생명에 관하여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9:16) 부자 청년이 영생을 원하는 것은 재물을 잃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생명이 있어야 재물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9:17)

 

예수님의 대답은 재물을 지키고자 애쓰지 말고 사람을 지키기 위해 애쓰라는 것입니다. 계명의 내용이 모두 사람을 지키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19:18~19)

 

더 나아가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하십니다.(19:21) 소유를 지키기 위해 영생하고자 하는 부자에게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하시는 것은 죽으라는 말씀과 같지요. 영생을 묻는 자에게 죽음을 얘기하는 셈입니다. 부자 청년에겐 예수님의 대답이 동문서답(東問西答)입니다.

 

부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19:21)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하셨지만, 청년은 당연히 거절합니다.(19:22) 가진 게 많았으니까요.

 

소유가 크면 예수님 따르기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을까요.(19:24)

 

그런데 소유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른 이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도 나를 따라오라하셨지요.(4:19) 베드로는 망설이지 않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것은 가난했기 때문일까요? 베드로는 소유가 적었기 때문에, 그래서 포기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나섰을까요?

 

아닙니다. 베드로도 제법 소유한 게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를 소유한 선주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럴듯한 자산가였습니다. 베드로도 부자라면 부자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나선 것은 가난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도 가질 만큼 가진 사람이라 예수님을 따라나서기 쉽지 않았습니다.

 

가난한들 예수님을 따를 수 있을까요?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누구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자기 소유를 포기할 만큼 가난하진 않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사람은 바늘귀보다 훨씬 큰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바늘귀보다 훨씬 큰 배를 소유한 부자였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나섰을까요.

 

나를 따르라”... 부자 청년에게 이것은 선생님의 훈화였지만, 베드로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16:16)

 

나를 따르라 부르시는 이가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부자 청년은 굳이 예수 선생을 따르지 않았고,(19:16) 나를 따르라 부르시는 이가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19:26)

 

스승 만 명에게 가르침을 받아도, 생명을 얻을 순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한 분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사로잡힐 때에, 소유를 팔아 사람을 지키는 참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를 따르라 부르시는 이는 선생님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무거운 재물 지고 가는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할 수 없는 낙타입니다. 재물 때문에 근심하는 부자는 가여운 짐승입니다.

 

낙타입니까, 제자입니까.

 

하나님께서 제자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르라.

 

 

첨부파일 140316_민들레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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