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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없습니다 _ 욥2:1~6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4.07.13|조회수115 목록 댓글 0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습니다. N극이 있고 S극도 있습니다. 친구도 있고 원수도 있습니다. 은혜도 있고 고난도 있습니다.(1:29) 복도 있고 화도 있습니다.(2:10) 앞면도 있고 뒷면도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이런 양면성이 있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양면성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생명과 죽음입니다. 생명은 있지만 죽음은 없습니다.

 

죽음은 비과학적입니다.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사람 중에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없는데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음의 존재를 믿습니다. 살아있는 사람 중에 죽음이라는 상태를 실험으로 증명해낸 사람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죽음을 증명된 가설인양 받아들입니다. 죽어보지 않았지만, 죽음을 증명하지 못했지만 죽음이라는 게 있다고 상상할 뿐입니다. 뛰던 심장이 멈추고 여기서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의 인기척을 느낄 수 없을 때, 이런 상태를 죽음이라 부를 뿐입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동산에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선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를 심으셨습니다.(2:9)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설계도엔 죽음에 관한 그림이 없습니다. 죽음은 동산 밖에서 살았던 가인에게 시작되었지, 하나님에게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아벨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창조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죽음을 허락할 리 없고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하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죽이지 않습니다. 더더군다나 억울한 죽음을 허락하실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벨은 죽었고, 그런 죽음이 흔합니다. 흔한 죽음에 둘러싸여 일상은 치명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도 아니요, 과학적이지도 않은 죽음이 사람에겐 치명적인 것이 현실입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학살당하고, 세월호 침몰로 고등학생들이 희생당합니다. 이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잔인하거나 끔찍하지 않아도, 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는듯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의 소유물을 넘기셨고 욥의 뼈와 살을 내주셨지만,(1:10;2:5) 욥의 생명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2:6) ‘하나님의 아들들과 함께 하늘 어전회의에 참여한 사탄은, 하나님에게 도전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거스르진 못했습니다.(1:6;2:2) 욥의 생명을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창조하시지도, 허락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죽음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욥처럼 소유물이 없을 때도 있고, ‘뼈와 살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꼭 죽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을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어전회의에 참여하여 하나님과 직접 토론할 수 있는 사탄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불허하신 것을 할 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창조하시지도 않았고 허락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우리의 심장이 멎는다 해도, 심지어 잔인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우리의 동맥이 끊어진다 해도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죽음이라 상상하는 것을 이라 하십니다.(11:11,14) 바울도 죽은 사람들을 자는 자라 부릅니다.(살전4:15) 우리가 죽음이라 상상하는 것은 잠입니다. 사탄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을 상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상상하여 두렵게 하는 것입니다.(10:29~31)

 

가난할 수 있고 아플 수도 있습니다. 가난하고 아플 때 두렵습니다. 죽음을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할 때 혹은 아플 때 죽음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을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가난해도 아파도 죽지 않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가난과 아픔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능력입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2~13) 풍부할 때에도 욥은 처신을 잘했고,(1:5) 욥은 가난하고 고통스러울 때도 의연했습니다.(2:10) 욥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소유가 많고 건강한 사람이 유능한 것 아니요, 소유물이 없고 병들었을 때에 능력이 증명됩니다. 하나님께서 자랑스러워했던 욥은 부자라기보다 유능한 사람입니다.(1:8;2:3)

 

부유할 수도 있고 빈천할 수도 있습니다. 건강할 수도 있고 병약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에 관하여는 양면성이 없습니다. 죽음은 없습니다. 인생에는 여러 양면성의 원리가 가득하지만, 생명에 관한한 그 이면이 없습니다. 죽음은 없습니다. 생명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영생입니다우리는 영생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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